시시콜콜한 나의 이사 이야기 - 3 D -240
지금 와서 돌아보면 처음부터 내 선택지에서 ‘이사’라는 변수는 빠져있었던 것 같다. 부동산의 ‘ㅂ’도 모르면서 남들 다 한다니까 섣불리 덤벼든 용기는 어디서 난 건지. ‘설마’와 ‘혹시’ 사이를 오가다가 세금과 이자라는 덤터기만 뒤집어쓰게 된 셈이었다.
이제 와서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괜한 일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후회만 밀려왔다. 하지만 남편은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인생의 모토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발휘하겠다는 듯 요동치는 집값에 아무런 내색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얼떨결에 따라나섰던 나와 달리 남편의 이사 계획은 분명했고 그래서 이런저런 소문과 낙차 앞에 초연했다.
남편의 생각을 알면서도 나는 전세 재계약이 돌아올 때마다 이사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신도시 공사가 한창이라 불편한 점도 많았고, 아이들 전학에 엄두를 내지 못한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법 자리를 잡아가던 나의 일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13년째 독서수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어렵게 자리 잡은 뒤 입소문을 타면서 제법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업을 우리 집에서 했기 때문에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건 곧 나의 ‘실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새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해도 당장 이사하는 것에 적극적일 수 없었다.
전세 재계약은 2년마다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두 아이의 전학을 핑계로 이사를 미루며 남의 다리 긁듯 시간을 보냈다. 이사 가고 싶은 의향을 종종 보였던 남편은 몇 년 전 시동생이 그 지역으로 이사하고 나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재계약이 돌아올 때마다 고민은 깊어졌지만 남편 역시 아이들 때문에 쉽사리 이사를 강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큰 아이가 고3이 되자 남편은 본격적으로 이사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여름이 저물어가던 어느 날, 남편은 대뜸 일정부터 물었다.
남편: 이사는 언제쯤이 좋을까?
나: 갑자기, 이사를?
남편: 이제 OO이도 졸업하니까 이사 갈 수 있잖아.
나: 분양받은 집은 매매할 줄 알았는데.
남편: 이 집 너무 오래됐잖아. 새 집 들어가야지.
나: 그 집도 벌써 7년이 넘어서 수리하고 들어가야 할 텐데 그냥 이 집을 리모델링하는 건 어때?
남편: 이 집은 30년이 다 돼서 이제 샷시까지 바꿔야 할 거야. 새 집을 조금 손보는 편이 낫지.
남편은 이미 오래전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간 내가 내세웠던 핑계도 더 이상 이유가 될 수 없었다. 큰 아이 고등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작은 아이는 기숙형 고등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사가 가능하게 됐다. 아이들 학교라는 방패 뒤에 숨어있던 내 일에 대한 열망을 이제는 드러내야 했다. 그런데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하는 엄마와 아내로서 가족의 적당한 인내심에 기댔던 많은 상황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수업하는 엄마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마음 놓고 친구를 집에 불러보지 못했다. 음식 냄새가 날까 봐 남편과 아이들의 저녁식사도 내 수업 이후로 미뤄지기 일쑤였다. 수업하는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한여름에도 편안한 옷차림으로 지내지 못했고 제자들 간식 챙기느라 정작 우리 아이들은 뒷전이 된 적도 많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나 때문에 편안한 보금자리를 일정 부분 포기하며 지내왔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남편은 내 일에 대한 불편함을 이따금 토로했고 내심 그만 두길 바라는 눈치를 보였다. 남편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참고 배려해 준 셈이었다. 긴 시간 동안 대출 이자 부담과 갖가지 행정적인 일처리를 도맡아 했던 남편의 고단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수업을 핑계로 이사를 미루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감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훅 치고 들어온 남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고 답하기엔 당장 놓게 되는 내 일에 미련이 남았고, 반대하자니 남편을 납득시킬 마땅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어물쩡거리는 순간을 남편은 놓치지 않았다.
“OO이 겨울 방학하면 이사 가는 걸로 하자. 조만간 이 집 내놓을게.”
어이쿠, 뒤늦게 정신이 돌아왔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뒤였다. 나는 그렇게 갑자기(?) 이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