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 Jan 18. 2023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하는 이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고




‘인간은 즐거움을 먼저 발견했을까, 아니면 괴로움을 먼저 발견했을까? P 20


너무도 평범해서 슬픈 나는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다. 즐거움이 먼저인들 괴로움이 먼저인들 나의 삶은 별다를 게 없기 때문이라기보다 애초에 이런 생각 자체가 스미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시선과 표현력을 가진 시인들을 동경했다. 독특하고 남다른 삶을 살아가는 시인일수록 뭔가 더 시인 같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시인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름의 근거조차 없이 처절한 삶 가운데 놓인 그들의 세계를 엿보고 싶어 했다.     

 

오래전 최승자 시인을 알게 됐을 때도 그의 유명한 시구 한 두줄만 겨우 아는 정도였다. 작품보다도 그가 처한 괴로운 상황이야말로 진짜 시인의 삶이 아닌가 하는 무참한 단정을 짓기도 했다. 이후 그의 작품을 찾아 띄엄띄엄 읽으며 제대로 이해한지도 모르면서 시구 속에 심어놓은 시인의 심연 근처엔 가닿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삶을 사로잡은 죽음과 공포를 마주하자 그의 작품과 삶 앞에서 나는 구경꾼을 자처했음을 알게 됐다.    

     

자신의 몸을 태우듯 담배를 태우고 두려움에 지쳐 흐릿해지는 정신을 가다듬느라 온몸이 말라가는 시인의 고통은 나 몰라라 했던 것이다. 그 괴로움의 대가로 주어진 시어에 환호하고 납작해지는 시인의 삶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진심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참으로 마음 아팠다. 매 순간 자신을 감당하느라 지친 작가의 괴로움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 삶이 온통 괴로움뿐인 사람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어린 시절 시인이 누린 풍요와 온정, 시인을 감싼 마을 공동체의 푸근함이었다. 시인이 쥐고 있는 삶의 끈이 느슨해질 때마다 그 기억이 끝끝내 끈을 부여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쪼록 그 기억의 온기가 조금만 더 힘을 내길, 그래서 파열된 작가의 마음을 보듬고 들이닥치는 공포에서 건져주기를 바란다.   


#한게으른시인의이야기 #최승자

작가의 이전글 계속 쓰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