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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an 17. 2023

계속 쓰는 밤

<마음 쓰는 밤>을 읽고



내 책을 출간할 즈음 무척 마음에 드는 책 표지를 발견했다. 고수리 작가의 ‘고등어: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라는 ‘띵 시리즈’였다. 표지에 가득한 푸른 윤슬이 무척 강렬했고 꿈틀꿈틀 역동감이 느껴졌다. 읽어보니 음식 에세이답게 짭조름한 바다향이 한가득인 데다 외할머니와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뜨끈했다. 그 사이를 오가는 작가의 문장에선 생동감과 섬세한 감성이 잔잔히 흘렀다.      


그렇게 고수리 작가는 쉽사리 잊히지 않는 이름과 함께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마음 쓰는 밤>이라는 아름다운 제목을 입은 최근작에는 ‘나를 지키는 글쓰기 수업’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쓰는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담았다. 개인적으론 올초 다짐과 달리 1월부터 이런저런 집안 일과 처리해야 할 며느리노릇, 엄마노릇이 겹친 탓에 초고 쓰기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던 참이라 이 책을 벗 삼아 읽으며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싶었다.  

    

이 책은 나의 바람대로 읽는 내내 마음을 건드렸다. 작가 개인이 경험한 글쓰기의 희로애락은 물론이고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통해 만난 분들의 사연을 읽노라면 잔잔한 파문이 멈추지 않고 일었다. 제일 먼저 자극받은 부분은 작가가 한 주에 쓰는 분량이었다. 매일 틈틈이 간절하게 쓰다 보면 무려 160매 정도의 글이 모인다는 고백에 처음엔 감탄이, 이어서 작은 한숨이 흘렀다. 160장은커녕 16장도 못쓸 때가 잦은 요즘이라 그 분량은 더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다. 쓴 글의 분량은 간절함의 분량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자 무한반성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내 마음에 와닿은 사연은 작가가 글쓰기 교실에서 만난 정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오늘 아침에 ‘진정한 고독은 아주 고아하게 혼자 서는 것’이라는 문장을 읽었어요. 일흔다섯의 저도 고아하게 혼자 서 있습니다. 작가는 아니지만 날마다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읽고 쓰는 노인에게는 아픈 몸과 사이좋게 지내는 지혜가 중요하지요. 아침 일찍 읽기 위해서 규칙적인 잠자리에 듭니다. 오후 내내 쓰기 위해서 건강하게 식사하고 자주 걸어요. 언제고 찾아오는 책과 문장이 있기에 매일매일이 새롭습니다.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사람 같아요. 젊고 활기찬 여러분과 함께한 나날이 기쁨이었습니다. “ P 264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이지만 글에서 향기가 느껴졌다. ‘작가는 아니지만 날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부분에선 단정한 일상과 경건함까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언젠가부터 나이 많다고 날마다 푸념했는데 ‘일흔다섯’이라는 나이까지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헤아리자 뭔가 쫓기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글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은 책이라는 결과물만으로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자 어쩐 일인지 더 쓰고 싶어졌다. 투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 훗날 고아하게 혼자 서기 위해 지금의 쓰는 시간은 더욱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었다.       


작가는 글쓰기 수업을 통해 1000여 명의 글을 만난 사연을 언급했는데 그 부분을 읽다가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서사, 당신의 서재’에서 진행했던 책 만들기에 참여한  39명 중에 내 글도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퇴고를 거듭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내 책장에 꽂혀 있는 ‘ESSAYIST’를 꺼냈다. 어딘지 낯선 내 글을 다시 읽으니 여지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내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찾아오는 부끄러움. 그걸 물리치듯 글 마지막에 실린 작가님의 코멘트에선 다정한 격려가 흘러나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시선이 참으로 따스해요. 공원에서 마주친 아이엄마 이야기가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전해주어요. 마치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요, 담백한 문체와 단정한 문장들, 복잡한 고민과 감정을 가졌지만 결국에는 따스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기 때문일 거예요. 제목처럼 정희님이 꺼내본 순한 마음이, 그저 막연한 희망이나 긍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감정을 겪어보고 난 후에 얻는 깨달음이라서 소중했어요. 이런 시선으로 계속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 - 에세이스트 VOL.01 P120   



#마음쓰는밤 #고수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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