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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an 26. 2023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을 읽고



지난여름부터 초고를 모았다. 처음엔 마냥 신이 났다. 글이 모일 때마다 옷장에 맘에 드는 새 옷 걸어놓은 것처럼 든든하고 뿌듯했다. 하도 만지작거려서 그런지 눈에 익은 글은 술술 읽혔다. 가독성 쩐다며 으쓱했다. 글 속에서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 떠오르면 몇 번이고 다시 찡했다. 이해는 쉽고 감동은 자주 찾아왔으니 나쁘지 않은, 어쩌면 꽤 괜찮은 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쓴 걸 내가 읽고선 마음대로 착각했다. 딱 거기에 머물렀다면 정신건강엔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글이 어느 정도 쌓여 투고해야 하는 시점에 찾아왔다. 남들에게만 듣던 ‘투고’가 코앞에 다가오자 묶어놓은 글이 부담스러워졌다. 어떻게 지나는 줄 모르게 일주일은 흐르고 어느새 새해를 맞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글은 몇 주 전과 다를 바 없는데 마음만 마구 앞서가는 바람에 자꾸 기우뚱거렸다. 그런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준비하려고 이 책을 읽었다. 투고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이 필요했다. 막연한 것이 뚜렷해지면 생각보다 쉽게 풀리곤 했으니 말이다.


허나 직관적인 제목과 자신감 넘치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너무 또렷해져서 오히려 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뿌옇던 눈앞은 깨끗해졌으나 그로 인해 내 글의 단점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웃음기 쫙 뺀 저자의 단도직입 앞에 어렴풋이 예상했던 고난의 길은 더 명료해지기만 했다. 결국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나와 내 글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쓰는가’보다 더 난해한 질문 ‘왜 투고하는가’로.

어쩌면 투고의 진짜 시작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내 원고로 돌아가 더 고민하게 만들고 더 확실하게 만드는 과정 모두가 투고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 원고의 콘셉트와 주제, 핵심독자와 확산독자에 대한 깊은 고민 후에야 읽을만한 기획서가 나오고 괜찮은 원고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투고 과정의 맨 앞에 두기에 충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도 ‘왜 투고하는가’라는 질문에 내놓을 마땅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대답은 이 책 속에 있지 않다는 것만 확실해졌다. 내 원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라는 걸 다만 안다.


‘우리가 이토록 매력적인 책의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까닭은 책 속에 확고부동한 길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이 더 자주, 더 많이 길을 잃게 만들어 또 다른 책의 세계로 계속 항해하도록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P16 라는 책 속 문장처럼 이 책은 투고를 앞둔 예비저자가 길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의 원고로 돌아가게 만든다. 자신의 세계를 좀 더 헤매기를, 그래서 빵부스러기를 따라 길을 찾은 남매처럼 그 안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으라고 격려한다. 돌아 돌아 가더라도, 길을 아예 잃더라도. 나 역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저 기막힌 은유를 다시 한번 빌려 오자면, 여전히 많은 예비 저자가 ‘유리창’ 같은 원고가 아니라 ‘거울’ 같은 원고를 보낸다.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원고는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세상)과 사람들(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거울 앞에 선 채 당신 자신만을 비추며 독백하고 있는가? 어쩌면 여기에서 “왜 투고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P26


 ”왜 쓰는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답을 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쓰는 겁니다. 우리가 글쓰기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글쓰기를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젊은이들이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신중하게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돈 한 푼 만져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하는 취향이 있어야 합니다.” 폴 오스터 <글쓰기를 말하다:폴 오스터와의 대화> 2014



#고독을사랑하는취향이긴합니다만 #출판사에서내책내는법 #투고의왕도 #정상태 #유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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