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 Jan 31. 2023

고명 없는 삶

설 준비로 시어머니와 함께 장을 봤다. 마트는 대목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였다. 떡국 끓일 국물용 고기를 사려고 살피는데 어머니가 주로 끓이는 덩어리 고기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번 덩어리 고기로 국물 내고 손으로 잘게 찢어서 파마늘 간장 넣고 조물조물 무쳐 고명으로 올렸다. 나는 그 과정이 지나친 수고 같다고 늘 생각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내게 그걸 시키지 않고 손수 하셨는데도 그랬다. 며느리는 이런 것이다. 이참에 잘 됐다 싶어서 국거리용으로 잘라놓은 고기팩을 집어 들고는 “이걸로 볶아서 끓여도 괜찮잖아요?” 어머니께 말하며 카트에 담았다. 순한 시어머니는 어디선가 찾은 덩어리 고기를 슬쩍 내려놓으셨고 결혼 24년 만에 처음으로 자른 고기를 들들 볶아 끓인 고명 없는 떡국을 준비하게 됐다.     

 

설날 아침도 상 차리느라 주방이 몹시 분주했다. 전날부터 준비했지만 먹기 직전 준비해야 하는 음식도 있는 데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가 만든 갖가지 찬을 빠짐없이 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고명 없는 떡국이 못내 아쉬우셨던 어머니는 계란지단 얘기를 꺼내셨다.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놀란, 혹은 당황한, 어머니 입장에서 봤을 땐 뜨악한 표정으로 “아, 지금요?” 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표정을 읽은 어머니는 “아유, 그래 급한데 뭐 그냥 먹지.”라며 또 금세 후퇴하셨다. 그런 어머니 마음도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김가루 듬뿍 올릴게요.”라는 말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명절 음식이 한 상 차려졌고 마지막으로 떡국만 나가면 되는데 그 잠깐 사이에 어머니는 고명으로 올릴 파를 쫑쫑 썰어놓았다. 김가루를 올리며 파릇한 파도 조금 올렸더니 꽤 괜찮아 보였다. 그러면서도 뱃속에 들어가면 그게 그거지, 만두랑 고기에 단백질 가득한데 뭘 계란 지단까지. 고명은 투머치야. 없어도 그만이지 뭐. 이런 생각으로 찜찜한 기분을 합리화를 했다.   

  

그런데 오늘 냉이김밥을 싸는 요리 영상을 보다가 불현듯 설날 아침이 떠올랐다. 내가 생략하려 했던 고명은 정말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에 잠겼다. 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보태는 마음, 지금도 괜찮지만 더 나아지게 만들려는 애씀. 대충 뚝딱 마무리 짓지 않고 끝까지 정성을 다한 증거. 나는 고명을 그렇게 생각했으면서도 굳이 허례허식이란 이름에 가뒀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단정 지었다. 왜냐, 귀찮았기 때문이다. 내 한 몸 꿈쩍거리기 귀찮아서 안 해놓고 갖가지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가며 나를 방어했다. 며느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왜 하필 오늘 잊었던 떡국 고명이 떠올랐을까. 부끄러움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올린 출간 소식에 축하메시지를 남겼으면서도 한편으론 나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 매일 글 쓴다고 sns에 인증사진 올리고 to do list 올리는 꼴값을 떨지만 마음처럼 글은 쑥쑥 모이지 않는다. 몇 번의 퇴고를 거쳐도 내 눈에만 익숙해질 뿐 과연 읽을만한 글인지 자신이 없다. 심지어 내 글을 기다리는 이는 아무리 후하게 셈해도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남들은 조용히 있다가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턱턱 잘도 내는데 나는 뚜렷한 결과물도 없이 매일 그날이 그날이다. 매일 카페 죽순이처럼 노트북 앞에 앉아 있지만 진도는 지지부진, 피곤은 쌓이고, 거북목과 허리 어깨 통증은 만성이 된 데다 글 쓴답시고 만남도 줄여서 일상의 즐거움은 전무한 수행자처럼 살아간다. 그저 읽는 사람으로 사는 게 더 어울렸을 작은 그릇이 책 만들기에 꽂혀서는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요 며칠 브런치북 수상자들의 작품을 읽었다. 탄탄한 커리어와 전문가다운 짬으로 가득한 글이었다. 콘셉트는 확실하고 한 분야에 오래 몸담은 전문가의 통찰이 명쾌해서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저절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들에 비하면, 그 글들에 비하면 나는, 내 글은 어떤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반사신경처럼 저절로 비교가 됐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이 정도였다. 한 번도 탁월하지 못했다. 공부도, 외모도, 하는 일에서도 언제나 뜨뜻미지근하게 중간에 머물렀다. 살림도 취미생활도 언제나 고만고만하게, 귀찮음을 무릅쓰지 않았다. 고명을 준비하는 마음을 요란하다 폄하하며 제거해 버렸다. 그러면서도 그걸 기어이 올려내는 남의 결과물엔 남몰래 부러워했다. 내 인생에 고명을 올리고 싶어 하면서 그걸 준비하는 마음의 싹을 잘라버렸던 거다. 수고에 비해서 맛의 차이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알았던 것 같다. 사소한 손길 하나와 귀찮음을 이기는 정성이 결국은 남과 다른 한 끗을 만든다는 걸. 고명은 꾸미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명백한 증거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을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