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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Feb 17. 2023

다정함이 전부예요

<다정함은 덤이에요>를 읽고

  



몇 년 전 좋아하는 작가님이 스토리에 누군가의 글을 올렸다. 가식이라곤 한 방울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솔직하고, 그래서 시원시원 재미있는 글이었다. 쓴 이를 찾아보니 ‘봉부아’, 어디 유학이라도 다녀오셨나? 역시 이런 자신감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지. 내 맘대로 샹젤리제 거리에서 풍겨오는 버터 향을 예상하며 블로그를 열었다.      


봉부아는 ‘봉천동 부자 아줌마’를 줄여 부른 닉네임이란 걸 시작으로 ‘진짜 이 분 뭐지?’ 하며 그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정체에 대한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그분의 글담은 예상대로 역시 막강했다. 쌓인 글의 양이나 블로그 구독자 수도 어마어마해서 출판사에서 이 분을 왜 그냥 놔두나 했더니, 역시나 이렇게 근사한 책 한 권을 내놓았다.  

   

그렇게 서로를 몰랐고 공통점이라곤 쌍수(응?)밖에 없는 우리가 어떻게 댓글을 나누는 사이가 된 걸까?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봉부아 님이 짜잔 나타났고 그걸 놓칠 리 없는 내가 먼저 팔로우를 했다. 그리곤 그분의 일상글을 염탐하듯 훔쳐봤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우주대스타 봉부아 님이 내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린 게 아닌가. 나는 보기와 달리(?) 엄청 소심해서 댓글도 몇 번이나 생각하다가 남기곤 했는데 그날은 글을 남길 이유가 충분했다. 그렇게 댓글을 트면서 작가님의 유머와 일상에 스며들게 됐다.     


그 모든 건 봉부아 님의 다정함 덕분이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김설 작가님의 <사생활들>에는 ‘생파리’라는 단어가 나온다. 김설 작가님의 어머니가 작가님의 살갑지 않은 면을 볼 때마다 했던 말이라고 한다. 사전적인 의미는 ‘남이 조금도 가까이할 수 없을 정도로 성격이 쌀쌀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는데 나는 그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잔정이 부족하고 노력해야 다정함이 올라오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거나 부담 주는 게 싫은 이유는 남이 나에게 그럴까 봐 지레 겁을 먹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나와 달리 봉부아 님은 정이 넘친다. 그렇다고 선을 넘는 오지랖을 부리지도 않는다. 내 안으로만 시선이 향하는 좁디좁은 나와 달리 봉부아 님은 언제나 다른 이의 삶 속으로 씩씩하게 들어간다. 그래서 이 책엔 봉부아 님을 둘러싼 ‘일상의 선생님’과 ‘만나고 싶지 않은 진상’과 ‘애틋한 사연을 품은 이웃’ 이야기가 풍성하다. 그의 시선을 통과해서 만난 세상은 또 어찌나 다정하고 다채로운지.    

  

작가님은 내 책을 읽고 남편 잡으러 우리 동네 올뻔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작가님의 인스타 피드를 통해 눈치챘지만 봉부아 님의 남편 분은 작가님만큼이나 따뜻하다. 서로를 ‘온리원’의 마음으로 대하는 부부애를 보며 마주치는 손바닥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관계는 상호보완적인 것이며 누군가의 다정함은 전염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봉부아 님이 이번에는 나를 잡으러 우리 동네 온다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작가가 또 생겼다.    


마음 같아서는 한 동네 한 봉부아가 좋겠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집집마다 이 책을 들여놓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무심결에 했던 나의 언행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이 책 덕분에 세상의 온도가 조금은 올라가지 않을까, 이번에는 근거 있는 예감을 품어본다. 

    

#아버님댁에이책놔드려야겠어요#다정함은덤이에요 #봉부아 #자상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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