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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Feb 28. 2023

기꺼이 찾아나설 용기

<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를 읽고

   



카피라이터 작가의 일주일 글쓰기 안내서를 읽었다. 글쓰기의 시작부터 글감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한 편을 완성하는 전 과정을 요일에 담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월요일엔 노트 한 권을 준비하라거나 화요일 수요일엔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글감을 뽑고 목요일엔 글 한 편을 시작하라는 바람직한 전개가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글쓰기가 무척 쉽게 여겨진다. 모든 과정은 당연하다는 듯 순조롭게 다음으로 연결된다. 제목처럼 날마다 그냥 쓰면 글 한 편이 뚝딱, 책 한 권이 얼씨구나 하고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다.     


글을 쓴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필 몇 번 끄적이고 토독토독 자판을 두드리면 한 문장이 금세 나온다. 한 문장이 시작되면 다음 문장은 저절로 따라오기도 한다. 서미현 작가의 말처럼 날마다 그냥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냥’ 쓰는 것에서 ‘잘’ 쓰는 것으로 넘어가는 길이 남아있다. 그 지점을 넘는 건 좀처럼 쉽지도,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문장마다 매만져주고 공들여 다듬어야 아주 쬐금 읽을만한 글이 된다.     


그뿐인가. 어렵사리 글의 꼴을 갖춰도 자연스럽게 문단을 연결시키는 산은 또 얼마나 높은지. 꾸역꾸역 근유통을 참아가며 산을 몇 개 넘어야 독자가 오해하지 않을 만한 글이 겨우 나온다. 난데없이 용기가 발동해 투고라도 할라치면 이번엔 쓴 글을 꿰뚫는 콘셉트가 필요하다. 이 책의 요일별 글쓰기라는 콘셉트도 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안간힘 아니겠는가.      


지난 몇 주 동안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작 50편을 모두 살펴봤다. 처음엔 다양한 이력의 작가가 펼치는 신선한 소재의 글 앞에서 자주 주눅 들었다. 특히나 눈에 콕 박히는 글감과 분명한 키워드와 주제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너무 흐릿하게 느껴졌다. 높은 벽 앞에 가로막힌 답답함에 시달렸지만 역시나 큰 공부가 됐다. 그 벽을 어떻게 뚫고 가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나 혼자 쓰고 고치는 일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결론을 얻었다.     


연말에 참석한 복복서가 송년의 밤에서 김영하 작가님은 타인에게 함부로 작품을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 내 안의 어린 예술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합평이 얼마나 상처받는 자리인지 나 역시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에 전적인 공감을 보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기꺼이 그 자리를 찾아 나설 용기도 필요하다.      


며칠 전 인친 작가님 두 분의 피드에서 비슷한 글을 발견했다. 초고를 쓴 뒤엔 지인들에게 공개하고 평을 참고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상의 독자를 상상하며 쓰는 것과 실제 목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히 다른 방향과 결과를 가져온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방황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가장 사랑받는 길로 안내하기도 한다. 여러 권을 출간한 작가들이 믿을만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삼자의 시선은 글에 대한 피드백뿐만 아니라 독자의 실체를 느끼며 계속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결국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쓴소리와 그걸 견뎌내는 뻔뻔함, 그뿐인지 모른다.


#날마다그냥쓰면된다#서미현#팜파스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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