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직업#곽아람#마음산책
평일엔 기자로, 주말엔 에세이스트로 쉼 없이 읽고 쓰는 곽아람 작가의 신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쉽게 쓴 것 같지만 독자가 궁금할만한 내용은 빠뜨리는 법이 없고 특유의 가독성 덕분인지 읽다 보면 묘하게 빠져든다. 책도 좋지만 구내식당 메뉴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리는 자유분방한 글도 읽는 맛이 쫀쫀하다. 끝없는 마감의 쳇바퀴를 읽노라면 작가가 걸치고 있는 기자나 작가라는 타이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읽고 쓰는 힘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오롯이 보인다.
어떻게 20년을 버틸 수 있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훌륭한 기자가 아니어서라고 답하고 싶다. 방황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성공에 대한 욕망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내겐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쓰는 사람이었지만, 주말엔 주중과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나’인 것만으로 충족되는 단단한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 덕에, 20년을 견뎠다. 218
#마음이하는일#오지은#위고
오늘도 나는 노트북 파우치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글 쓸 곳을 찾아 나섰다. 누가 시키지도, 내 글을 기다리지도 않지만 그랬다. 다 마음이 시킨 일이었단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자격을 따지기 전에 하던 일은 마무리하기로, 결과를 예측할 시간에 한 줄이라도 다듬어보기로, 마음의 부름에 일단은 답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나에게 자격이 있을지 걱정을 했다. 비틀스의 앨범도 13,000원, 내 앨범도 13,000원, 그래도 되나. 앨리스 먼로의 책과 내 책이 같은 가격이어도 되나.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적어도 매일 8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것 아닐까. 결과물을 못 낸 날도 밥을 먹을 자격이 있을까.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 비틀스와 가격이 같아도 된다. 예술가에 대한 편견은 오히려 나에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개미도 베짱이도 아닌,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힘껏,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계속하는 사람. 76
#슬픔이택배로왔다#정호승#창비시선
정호승 시인의 열네 번째 신작시집. 115편 중 9편을 제외하곤 미발표 신작 시라고 한다. 50년 동안 썼는데도 할 이야기가 여전히 차고 넘치나 보다. 섬세한 언어 사이를 모호하게 헤맬 땐 시인의 시선과 내 시야가 얼마나 다른지 절감한다. 그러다 문득 내 마음을 읽어낸 시어를 만나면 그 마음이 내 마음 같아서 어김없이 눈물이 툭 불거진다.
시인의 말 : 50년 동안이나 이 험난한 세월을 시를 쓰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시를 쓰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디에서 삶의 가치와 기쁨을 얻을 수 있었을까. (...) 이 시대에 시를 쓰는 일은 외롭고 배고픈 일이다. 그렇지만 시를 떠나 살 수 없는 게 지금까지 내 삶의 현실이자 본질이다. 19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