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글쓰기>를 읽고
얼마 전 글쓰기 강좌에 참석했다. 4번의 수업이 끝나는 날, 수업에 대한 소회를 돌아가며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구성원들만 모인 탓인지 글쓰기에 대한 각자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깊이 공감한 시간이었다. 다들 말씀을 어찌나 잘하시던지, 모두의 이야기가 또렷했지만 그중 글쓰기 모임을 진행 중이시라는 한 참석자의 말씀은 특히나 잊히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모임을 꾸려가던 그분은 얼마 전 한 카페에 모여 첫 오프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6명 정도 모인 자리이다 보니 대화의 데시벨이 자연스레 올라간 모양이었다. 잠시 후 뒤에 앉아 있던 남성분이 혼잣말을 가장했지만 모두의 귀에 또렷이 들리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은 개나 소나 글을 쓴대”
졸지에 개, 소와 동급이 된 그분들의 다음 반응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훅 끼친 수치심에 다들 어쩔 줄 몰라했을 것이다. 공동의 공간에서 지나친 소음을 유발한 것은 얼마든지 자제 요청받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소음이 문제였다면 높아진 데시벨을 낮춰달라는 요청이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기분 좋게 사과가 오갔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 앉은 남성분의 말에는 글 쓰는 사람에 대한, 더 정확히 짚자면 글 쓰는 여성에 대한 반감이 담겨 있었다. 혹여라도 그분들이 글 쓰는 걸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었을까? 만에 하나 그렇다 해도 개, 소에 빗댄 비난은 정당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모인 분들 중에 남성이 한 명이라도 끼어있었다면 그 남자분이 같은 반응을 보였을지 괜한(이라 부르고 근거 있는) 의심을 하게 된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글 쓰고 싶어 하는 분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내가 참석한 글쓰기 강좌에도 20여 분이 넘게 모였는데 남자분은 한 분이었고 그나마도 첫날 이후로 뵐 수 없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다들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남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느라 글쓰기‘같은’ 걸 할 여유가 없다거나 그런 유희는 시간 많은 여성들이나 누리는 호사라고 말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뿐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혹시 남성들은 애써서 말할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닌가? 말하지 않아도 자리를 깔아주는 사회에선 고단한 글쓰기에 굳이 몸담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성들이 세상에 외칠 채널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회는 뇌를 거치지 않은 아무 말이나 용인 가능하게 한다. 상대의 불쾌함은 너무나 쉽게 나의 통쾌함이 된다.
글쓰기는 자신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며 더 나은 나로 향하게 한다. 개나 소도 쓰는 글을 정작 배워야 할 분들이 모른척한다. 끝내 몰랐으면 좋겠다 싶은 얄팍한 복수심은 뭔지. 옹졸한 마음은 글과 함께 치워버리련다. 글쓰기란 관대한 것이니까.
우리 각자의 고유한 언어가 세상 밖으로 꺼내져 나올 때, 아주 미세한 진동이 일어난다. 내가 삼킨 울음, 내가 견딘 고통, 내가 바란 희망들이 미미하나마 세상의 공기 안으로 스며든다. 각자가 제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애쓰며 빚어내는 이야기, 목소리, 글, 이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P12
#여성의글쓰기 #이고은 #생각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