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 때 채워지는 충만함

시시콜콜한 나의 이사 이야기 - 7 D - 160

by 정희

D - 160



오래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요즘 짓는 아파트와 달리 곳곳에 베란다를 만들고 그 안에 문을 달아서 창고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아마도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처음 옮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장롱 같은 큰 가구와 갖가지 군살림을 수납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주거 공간에는 시대의 변화와 생활 패턴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초창기 아파트 구조에선 방이 큰 공간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실과 주방을 넓게 배치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성에 따라 구조가 변화되고 효율성을 강조한 요소는 곳곳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집도 지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답게 베란다 창고가 3개나 있고 현관에 짜 놓은 신발장도 꽤 커서 많은 짐을 수납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쑤셔 넣고 잊어버리기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런데 새로 이사할 집은 베란다 확장이 기본 옵션이라서 베란다라고 이름 붙일만한 공간은 안방 베란다뿐이었다. 그나마도 실내용 자전거 하나만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주방 쪽 베란다도 세탁기를 넣고 나면 남는 공간이 한 평 남짓이라 이대로 이사했다가는 짐을 이불 삼아 덮고 자야 할 판이었다. 이사 전에 짐을 대폭 줄여야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20년간 묵은 짐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구석구석에서 쏟아졌다. 싱크대 구석에서는 혹시 필요할지 몰라서 남겨둔 케이크 초 묶음, 홍보용 이쑤시개가 다섯 상자, 딸기 담아 파는 빨간 바구니들과 녹슨 커트러리 세트 다발이 나왔고 다용도실에서는 마트 오픈 사은품으로 줄 서서 받은 커다란 대야와 색이 바랜 플라스틱 도시락통 세트, 너무 오래되어 바짝 말라버린 일회용 물티슈가 대거 등장했다. 아이들 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한창 유행했던 인형 뽑기 기계에서 데려온 인형이 6 상자나 되었고 학교 준비물 모아놓은 게 10리터 박스로 2 상자, 작은 아이 준비물이라 종이박스를 잘라 만든 내 키만 한 하키 채, 코스트코 애정남인 남편이 충동구매한 일인용 축구공 소파까지 정리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 단일품목으로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자랑(?) 한 것은 다름 아닌 쇼핑백이다. 어림잡아도 이백 개는 넘을 것 같은 쇼핑백 뭉치를 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뭘 그리 사들인 것인가’를 시작으로 ‘왜 안 버리고 차곡차곡 쌓아뒀을까’로 생각이 이어졌다. 버리기 아까워서라는 핑계가 떠올랐지만 처분의 결정을 미뤄왔던 내 우유부단함의 결과가 분명했다. ‘나중에’ 필요할지 몰라서, ‘나중에’ 정리하자며 미뤄둔 나중은 오지 않았고 고스란히 삶의 군살로 쌓여갔다.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범위를 명확하게 잡을 필요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다소 좁게 잡는 편이 좋았다. 품을 들인 만큼 변화가 눈에 보이면 그나마 할 만했다. 이번에는 정리 범위를 주방 물품으로 한정지었다. 하루에 싱크대 두 칸씩 정리를 목표로 했고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바로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원칙이 확실해서인지, 범위를 좁게 잡아서인지 제법 정리가 되어 갔다. 수납장마다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공간이 주는 여유와 가벼움이 상쾌했다. 매일 치우고 비우고 버리는 시간을 보내보니 재활용품을 정리해서 분리 배출하는 것도 여러 번 반복되는 고단한 일거리였다. 게다가 돈을 써가며 버려야 하는 품목은 왜 그리 많은지. 가구와 자질구레한 짐들을 모두 처분하는 데 20만 3천 원이란 큰돈이 들었다. 생각 없이 구입하는 건 결국 돈을 내고 일거리를 사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정리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함부로 사들이면 얼마나 번거로워지는지 단단히 체험했다. 소비란 돈을 지불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나의 공간으로 옮겨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폐기 과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었다. 쉴 새 없이 쌓이는 플라스틱과 비닐쓰레기를 볼 때마다 플라스틱 고리에 머리가 끼어버린 바다표범과 비닐봉지를 삼킨 채 죽어가는 거북에게 미안했다.


환경을 보호하는 첫걸음은 적게 소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생각을 일상에 적용시키는 것은 왜 그리 어려운지. 환경 보호라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어도 주변을 가다듬는 것은 각자의 삶을 가꾸는 필수요건인데 말이다. 그러려면 나의 삶과 일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읽은 것이 내가 되듯 내게 던진 질문이 내 삶을 만들 테니까. 이제껏 해온 질문의 전환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었다. 무언가를 내 삶으로 옮겨오기 전에 했던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이게 없으면 못살까?”로 바꿔봤다. 삶의 군더더기를 정리하는 기준도 “무엇을 버릴까?”에서 “무엇을 남길까?”로 바꿔봤다. 결정이 한결 쉽고 명료해졌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에서 요조 작가는 “똑같이 비슷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아도 매 순간 공들여 임하는 사람의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윤이 나는가 봐요.”라고 했다. 작가의 말처럼 시간과 품이라는 공을 아주 조금 더하고 이제 막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리라 마음먹었을 뿐인데 내 삶에도 윤기가 돌기 시작한 듯했다. 비어있는 싱크대와 수납장의 공백이 개운했고 꼭 필요한 것만 남았다는 가뿐함 덕분에 일상도 한층 산뜻해졌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자리는 덜 가지는 것이 주는 충만함으로 채워졌다. 바쁜 일상에 치여 정리를 미뤄왔기에 이번 이사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놓치고 살았을 것들이다.


새삼스럽게 일상을 돌보는 사이, 부동산에서는 짬짬이 집을 보러 왔고 세입자는 이사를 갔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보였으나 뭐 하나 마무리되는 것 없는,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느릿하게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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