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선생님

시시콜콜한 나의 이사 이야기 - 8 D - 140

by 정희

D - 140



우리가 이사 갈 집은 분양 후 7년 동안 세를 놓은 터라 거실 바닥이나 벽지의 상태가 더 이상 새 집이랄 수 없었다. 화장실 벽타일도 깨지고 무너지는 하자가 생겨서 이사 전에 꼭 손봐야 했다. 도배만 새로 하고 들어갈 거란 처음 생각과 달리 공사가 제법 커질 것 같았다. 집이 안 팔려서 아직 이사 날짜도 잡히지 않았으니 급할 건 없었다. 일정리와 집 정리를 병행하느라 인테리어 공사가 뒷전으로 미뤄진 것도 있지만 오랜만에 하는 공사라서 사실 좀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뭘 알아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달까.


얼마 전 지인에게서 ‘사용하는 검색 툴에 따른 세대 구분법’을 전해 들었다. 기성세대들이 주로 ‘초록창’을 통해 세상을 검색한다면 젊은 세대들은 ‘*튜브’라는 영상채널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라 이 기준도 어느새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텍스트나 사진보다는 영상에 익숙한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게 흐름이 바뀐 모양이다. 너 나할 것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다 보니 틈과 짬을 파고들 수 있도록 영상의 길이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최소 시간을 투자해서 최대의 정보와 재미를 얻어가는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는 세상. 다들 여유를 잃어간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영상매체보다는 ‘초록창’이 익숙한 세대지만 어쩌다 폭넓은 정보가 필요한 경우에는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찾아보는 쪽을 선호한다. 처음으로 해외 자유 여행을 준비할 때는 세 곳의 도서관에 비치된 관련 가이드북을 찾아 읽었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무려 17권이나 될 정도였다. 이번에도 13년 만에 하는 인테리어를 위해 도서관부터 찾았다. 역시나 그곳에는 『작은집 레시피』부터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한 집』,『인테리어 스타일북』,『당신의 집을 편집해드립니다』 등 온갖 종류의 인테리어 지침서가 잔뜩 꽂혀있었다. 단독주택인지 아파트인지, 자가인지 전세인지, 평형과 공사 범위에 따라 주제가 세부적으로 나눠져서 조건과 상황에 맞게 골라 볼 수 있었다. 끌리는 제목으로 여러 권 꺼내 훑어보니 입을 모아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로 인테리어의 ‘컨셉’을 잡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톤 앤 매너’(전체적인 하나의 컨셉)는 인테리어에서도 참고해야 할 필수요건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하얀 집 인테리어도 명도와 채도에 따라 ‘모던’인지 ‘내추럴’인지 스타일이 나뉜다고 했다. 대형병원, 특급 호텔에서 많이 쓰이는 ‘클라우드 화이트’, 살짝 손때가 탄 듯한 정겹고 자연스러운 흰색인 ‘화이트 도브’, 노란빛이 도는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리넨 화이트’까지 저마다 다른 매력을 머금은 흰색이 수백 가지였다. 그러니 인테리어 업체에 ‘그냥 화이트 톤으로 해 주세요.’라고만 했다가는 소독약 냄새가 나는 듯한 병원 느낌이 될지, 스칸디나비아 어디쯤 있는 포근한 가정집 느낌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구별조차 힘든 그 많은 화이트 중에 하나를 정하는 건 나 같은 사람에겐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뭘 좀 알아야 요구나 조율이 가능한 노릇이다. 평소 생각해온 분위기가 어렴풋이 있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느낌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세하게 설명하긴 더 어려워서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인테리어 사진이 필요했다. 10여 권의 책을 찾아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초록 창 검색도 하면서 정보를 잔뜩 모아봤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를 한눈에 확인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그러다 2년 전 만들어둔 SNS 계정이 생각났다. 수업에 필요한 책을 검색한다는 프로페셔널한 이유로 시작했으나 어느 틈엔가 재미난 댓글과 유머 영상에 빠졌고 기름기 좔좔 흐르는 먹방 피드에 침 흘리며 잠들던 밤들. 시간도 축지법을 쓰는지 10분 지났나 싶어서 시계를 보면 80분쯤은 훌쩍 지나기 일쑤였다. 자꾸만 침침해지는 눈 건강도 걱정스러운 데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과감히 끊었던 계정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이번에는 ‘인테리어 공사’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 딴 길로 새지 않을 거라 짐작했지만 재미난 영상 피드는 여지없이 나를 유혹했다. 나보다 나를 잘 안다는 알고리즘의 안내에 따라 한참을 키득대며 시간을 보낸 뒤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마음을 다잡고 검색창에 #욕실을 입력했다. 순식간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사진이 펼쳐졌다. 남의 집 화장실 구경에 기분이 잠시 묘했지만 사진 속의 화장실은 더 이상 화장실이 아니었다. 안방, 서재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멋진 공간이었다. 타일 하나, 조명 하나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신묘막측한 사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많은 피드에 파묻히다 보니 처음에 내가 원했던 분위기도 까먹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머릿속에 그려왔던 분위기와 느낌의 욕실 사진을 따로 저장했다. 어느 정도 모인 사진만 훑어보자 내가 원하는 욕실 스타일의 시각적인 윤곽이 잡혔다.


욕실을 시작으로 #거실 #주방 타일은 물론이고 #수도꼭지 #방문 손잡이까지 차례차례 둘러보며 인★의 도움을 받았다. 10년 전 분양할 때 유행이던 짙은 체리목 바닥에 두꺼운 몰딩, 샹들리에 거실 등이 내 취향과는 한참 멀다는 걸 확인했고 모아놓은 사진을 보면서 원하는 색감과 분위기로 다듬어 갔다. 인★ 덕분에 발품 팔며 찾아다녀야 할 일이 반쯤은 줄어들었고 결정은 몇 배나 쉬워졌다.


사실 그동안은 온라인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못했다. 진실된 인간관계는커녕 얄팍한 인맥 연결조차도 방해하는 요인이라 생각했다. 자기 과시나 허영에 들뜬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진짜’는 있었다. ‘찐’은 누구나 알아보는 법이며,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순기능이 어마어마해질 수 있다. 이제 SNS는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과 더불어 인테리어, 패션, 도서, 요리 등등 생활 곳곳에 새롭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또 다른 초록창이자 ‘선생님’이 된 것 같다.


인★선생님 덕분에 처음엔 막연했던 내 머릿속 그림을 보다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살펴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생각이 변화하거나 보완되기도 하면서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잔소리하지 않으면서도 최선의 결정을 하도록 안내하는 인★선생님. 물어보기만 하면 몇 만 개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그분께 앞으로도 신세를 많이 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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