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만나고 싶다

by 정희


아들이 온다고 했다. 집 떠난 지 한 달만이다. 대학 기숙사에 아들을 두고 온 날 밤, 330킬로 미터라는 물리적 거리를 절감한 탓일까. 아들의 빈 방에 들어서자 난데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함께 지낸 20년이 빠져나간 듯 공백의 무게에 짓눌렸다. 예상 못한 허전함에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휘둘리는 날이었다. 쏟아낸 울음이 번질수록 조금씩 옅어지는 슬픔을 확인하는 날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견뎠고 이제 곧 아들을 만나게 됐다.

아이를 보내고 가장 눈에 밟힌 건 챙겨 먹이지 못한 음식이었다. 일에 치여 잘 먹이지 못한 어미로서 느끼는 죄책감이 마땅한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을 볼 때마다 올라오는 후회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락할 때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니 집에 있는 동안 1일 5식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결국 ‘이것만큼은 꼭’ 챙길 음식을 추렸고 갈비찜이 첫 손에 꼽혔다. 메뉴가 정해지자 손이 바빠졌다. 우선 기름이 적고 뼈가 도드라지지 않은 갈비부터 골랐다. 아들 입에 들어갈 거라 생각하니 붉은 덩어리를 보기만 해도 신이 났다. 금액만큼이나 묵직한 고기를 들고 오는 길은 또 왜 그리 뿌듯했는지. 찬물을 여러 번 바꿔가며 핏물 빼는 번거로움도 감미로운 수고였다.


그러다 불현듯 끼어든 장면 하나가 떠다니던 나의 마음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벌써 5년이나 지난 4월의 그 날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갑작스럽게 터진 혈뇨가 무서운 경고처럼 친정아버지에게 날아든 즈음이었다. 정밀검사 때문에 아버지는 입원해야 했고 간병을 위해 엄마도 함께 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어렵게 자란 탓에 음식 투정을 해본 적 없는 아버지였지만 병원밥 특유의 향과 밋밋함 때문인지 제대로 된 끼니를 놓친 지 며칠째였다. 아빠도 아빠지만 엄마의 얼굴에 드리워진 근심과 피곤의 그늘은 퍼석한 머리카락만큼이나 금세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두고 볼 수 없어서 갖은 솜씨를 끌어모아 음식을 준비했다. 채소를 다져 넣은 계란말이를 두툼하게 굽고 아몬드와 호두를 넣은 진미채도 짭조름하게 볶았다. 적당히 익어 매운내가 빠진 파김치로 입맛을 돋우고 오랜 시간의 정성이 담긴 시어머니표 장아찌도 칼칼하게 준비했다. 평소 좋아하시던 고기 요리만 준비하면 홀쭉해진 부모님이 조금은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십몇 년을 살면서 친정부모님께 내 손으로 지은 밥상을 대접하는 게 처음이었다. 철없는 딸의 송구한 마음을 부들부들한 소갈비찜으로 대신 전하리라 마음먹었다. 부지런히 고기를 사러 나선 길, 한 근에 오만 팔천 원 하는 소갈비와 만 팔천 원 하는 돼지갈비 사이에서 잠시 머뭇거렸던 것 같다. 깔끔하게 포장된 소갈비 팩을 들었다 놨다 하던 나, 이내 돼지갈비 2근을 사들고 나온 그 날의 기억이 난데없이 지금의 나를 훑고 지나갔다. 들고 나오는 손이 부끄러웠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그즈음 맛있게 해먹은 돼지갈비찜을 자꾸 기억해냈다. 돼지고기의 얕은 맛을 좋아한다는 아빠의 진담 같은 빈말도 내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동원했다. 하지만 그 머뭇거림 속에 담긴 속내만큼은 나 자신에게 숨길 수 없었다.


있으나마나 한 아들, 며느리에게 돌봄을 기대할 수 없는 친정 상황에서 외동딸로서 느끼는 은근한 부담이 있었다. 병치레가 길어질 거란 예감과 함께 부담해야 할 병원비 걱정도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갔을 것이다. 피오줌을 쏟아내는 아비 앞에서 내 앞에 놓인 의무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몇 곱 차이나는 소갈비보다 돼지갈비 여러 번이 낫겠다는 부끄러운 셈이 작용한 순간을 어찌 잊을까.


음식에 담긴 인색한 속셈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기뻐했다. 고맙다며, 깨알 하나까지 허투루 남기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좋아하실수록 나의 좁은 속내가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못난 딸이 준비한 음식을 다 드시기도 전에 암 선고를 받았다. 복강 안은 이미 암세포로 가득했고 이내 위와 장의 활동이 멈추면서 식사대용으로 나온 환자용 음료만 간신히 드실 수 있었다. 날로 야위어가는 통에 항암은 더 어려워졌고 결국 인공항문을 만드는 수술까지 했지만 물 한 모금조차 시원하게 넘기지 못했다. 다음번으로 미뤘던 딸내미의 소갈비는 영영 드시지 못한 채 아버지는 황망히 떠나셨다.



5년 전 그날, 팍팍한 살림도 아니건만 왜 선뜻 좋은 걸로 집어 들지 못했을까. 아들 입에 들어가는 건 더 좋은 게 없는지 찾는 눈길이 어찌 제 아비에게는 그렇게 인색하고 옹졸했을까. 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두 마음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손수 옷을 지어 입히고 별식을 만들어 먹이던 아비의 사랑은 날름 받아먹어 놓고 벌써 다 잊은 것인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이렇게 잔인한 의미였는지 미처 몰랐다. 그 말을 몸소 증명한 못난 기억은 나를 자주 할퀴었다. 그날의 인색함이 나에게 주는 형벌이라면 사는 내내 나만 아는 속죄를 하고 싶다. 전하지 못한 사랑을 홀로 품고 살다가 훗날 아버지를 만나면 고스란히 돌려 드리련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한 상 가득 차려 들고 나는 듯 그곳에 갈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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