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거절 앞에서

<난생처음 내 책>을 읽고

by 정희

이경 작가님께.


이번 신간을 완독 한 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작가님을 휩싸고 돌던 격동이 제게 옮겨왔는지 읽는 내내 하고 싶은 말이 한꺼번에 몰려들었어요. 넘치는 말을 퍼내고 남은 마음을 살피느라 이제야 글을 남깁니다.


잠시 머물다 흘려보내야 할 어떤 것이 마음을 채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꾸만 어깨가 가라앉는 그런 마음이었지요.


떨쳐내려 할수록 착 달라붙어 버리는 그 감정의 이름을 이 책에서 발견했습니다. 바로 ‘내 글 구려 병’입니다. 쓰고 보니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병명이었네요. 마음에 고여서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 어두운 감정은 결국 병을 만들고야 말았나 봅니다.


그 병은 공모전 탈락이라는 작은(?)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그간 공모전에서 떨어져 본 다수의 경험은 아무짝에 소용이 없었는지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가 마음을 떨어뜨렸습니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 공모전 탈락이 유독 마음을 흔든 이유는 얼마 전 발견한 제 책의 리뷰 때문임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작가님 말씀처럼 작가에게 악평은 접착제처럼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잘 압니다. 더구나 악평을 올려주신 분은 제 책을 선택하고 시간 들여 읽어주신 분이니 어떤 평가든 감사의 마음으로 넙죽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어른스러운 마인드도 장착한 지 오래였지요.


하지만 악평이라 이름 붙이기도 모호한 짧은 리뷰는 제 마음을 오래 흔들었습니다. 공모전 탈락이라는 거절과 함께 마주한 까닭인지 부정적 시너지가 엄청났습니다. 책을 세 권이나 낸 작가님도 시달렸던 그 마음. ‘이렇게 두려운 마음으로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써도 되는 걸까’라는 불안이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하고 용기와 좌절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일. 가슴 찌르르한 문장 하나를 만나기 위해 그저 그런 수십, 수백의 문장을 끄적이는 바보 같은 일. 다 알면서도 저는 왜 쓰는 고통을 택한 걸까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쓰는 고통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었던 걸까요.


좋은 글을 읽을수록 근사한 책을 만날수록 정말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쳤습니다. 새털처럼 가볍게 다가가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글이 제 것이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깊어질수록 제 안에서 나오는 문장들은 더 두툼해졌고 생각은 납작해졌어요. ‘구리다’는 말이 이렇게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쓰겠다는 결심을 의심하게 했고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뒷걸음치게 만들기도 했지요.


답답한 마음에 글 쓰는 누구라도 붙잡고 제 글에 대한 평을 듣고 싶었습니다. 혹평일지라도 제 글이 나아질 수 있는 객관적 조언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고 싶을 만큼 막막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도 그 마음은 여전합니다. 작가님의 도전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거나 저 역시 포기하지 않겠다는 뻔한 말은 이 책엔 어울리지 않지요.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 담백한 작가님의 글과 경험은 읽는 이까지 투명하게 만드나 봅니다.


다만 ‘내 글 구려 병’이 저를 다시 괴롭힐 때, 거절 앞에 힘이 빠질 때, 잘 쓰고 싶은 욕심에 글이 자꾸 무거워질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책이 되었습니다. 자주 꺼내 다시 들춰보며 제 마음을 되짚어 볼게요.


그 어느 때보다 제 마음이 가득 담긴 리뷰가 되었네요. 참 많이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감추고만 싶었던 마음을 쏟아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작가님의 글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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