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

- <다섯째 아이>를 읽고 -

by 정희


무섭거나 마음 찜찜해지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기분을 희석시키고 안온한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마음의 요동이 버거운 탓이다. 그러면서도 영화나 소설을 고를 땐 사전 정보를 차단하고 초면인 채 만나는 걸 좋아한다. 몇 번의 선택 실수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그런데 참 묘한 건 표지나 제목에서 뿜어내는 어떤 기운은 여섯 번째 감각에 걸려들어 대부분 피해가게 한다.


이 책 또한 표지와 제목에서 음침한 분위기, 표정을 알 수 없는 문틀 너머의 아이, 경험자로서 익히 알고 있는 아름답지만은 않은 임신과 출산, 심지어 하나도 둘도 아닌 다섯 아이라는 수많은 단서를 흘리고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데다 읽어야 할 책은 차고도 넘치니 이 책을 건너뛸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어떤 힘에 이끌리듯 이 책을 8월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했다. 그리고 책을 펼칠 때마다 후회했다. 잔인한 장면이 하나도 없는데 무서웠고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에 숨 막혔다. 게다가 도리스 레싱이 툭툭 던지는 질문은 어찌나 심오한지… 심히 어지러운 한 달을 보내야 했다.


이 책은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첫 만남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전통적인 가족을 이상으로 꿈꾸며 결혼한다. 대저택과 건강하고 순한 아이들, 휴가 때마다 모이는 화목한(?) 친척들 속에서 그들이 바라던 꿈을 실현한다. 비록 양가 부모님의 지원이 바탕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없는,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가정에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면서 모든 것은 흔들리고 갈라진다.


부채꼴의 넓은 호처럼 퍼지기만 하던 휴가철 방문 친척은 0으로 수렴되고 첫째부터 셋째 아이는 조부모를 십분 활용(?)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남편인 데이비드는 넷째 아이까지만 자신의 아이로 인정한다며 해리엇에게 짐을 떠넘기고 넷째 아이 ‘폴’은 나약하고 예민한 아이로 성장한 데다 해리엇은 ‘벤’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맡는 희생양이 된다.


모두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벤’의 희생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번복한 해리엇은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상황에 마음 아프다가도 ‘네가 해리엇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니?’라고 묻는 작가의 질문엔 쉽게 답을 할 수 없다. 쌩쌩 달리는 차가 ‘벤’을 치길 바라는 해리엇의 모습에선 ‘모성애’는 본능인가, 사회화의 결과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뭔가 큰 사건을 저지를 것 같던 ‘벤’이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걸 볼 때 벤은 과연 비정상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와인 몇 병만 들고 와선 3주의 휴가를 누리던 친척들이 해리엇이 없는 곳에서 나누는 뻔뻔한 뒷담화나 ‘벤’만큼 이해받지 못한 ‘해리엇’의 고통에선 ‘가족의 이중성’을 목도하며 분통이 터진다. 많은 식구로 북적였던 커다란 식탁에 남은 것은 해리엇과 벤과 폴. 그들을 향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비판하다가도 엄마인 해리엇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는 나의 무의식에 오싹해지는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등장인물들의 수많은 선택과 변화를 통해 무엇도 단언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전통과 이상이란, 행복의 조건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허상인가? 작가는 또 다른 자아 ‘벤’을 앞세워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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