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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May 20. 2021

당신과 나의 부루마불을 위해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읽고



작년 이맘때, 내 신경은 온통 나의 첫 책이었다. 짬짬이 쓴 원고를 모으고 보충할 원고의 초안을 새로 쓰느라  머릿속은 온통 내 책 생각뿐이었다. 한 꼭지마다 글의 구성과 전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나의 미천한 경험 중에서 끌어다 쓸 것을 떠올리느라 깜빡이는 커서를 지겹도록 바라봤다. 하지만 그 고민을 넘어서 머릿속을 내내 지배하고 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제목'에 대한 압박이었다.

출판과 편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풍덩 뛰어든 '독립출판'이지만 제목이 발휘하는 힘과 비중은 본능적으로 알고도 남았다. 나 역시 제목과 표지에 끌려 선택한 책이 대부분이고 직관적인 선택 후에 실망한 경험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제목을 찾아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초안을 거듭 읽던 중 불현듯 한 제목이 떠올랐고 이거다! 싶은 희미한 확신까지 주었다. 얼른 인터넷 서점에 검색해보니 비슷한 제목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타고난 감각이 전무하고 촉은 무디다 못해 뭉툭한지라 겨우 찾아온 그 제목을 놓칠 수 없었다. 제목이 소중할수록 원고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누가 채가기 전에 내 제목으로 만들어야 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출간이란 산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문장을 다듬으며 초여름을 보냈고 본문 편집과 표지 시안만 남긴 채 한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가슴에 꽁꽁 싸매 두었던 제목 <경로를 벗어났습니다>를 여러 표지 위에 얹다가 이 제목을 검색해 본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뭔지 모를 싸한 마음이 맴돌았다. 서둘러 검색해보니 슬픈 예감은 어김없이 맞았고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라는 따끈한 신간이 내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한 번도 내 것인 적 없던 제목이란 걸 알면서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은 가시질 않았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제목이라 다른 제목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마땅히 떠오르는 것도 없는데 이쯤에서 그만둘까? 안 될 이유를 곱씹느라 며칠 동안 교정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마음의 열기를 식혀야 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나의 글과 거리가 생겼고 내 글을 생경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 덕분에 마음을 관통하는 두려움과 기대를 그제야 포착하게 됐고 그 마음이 담긴 제목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를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김훈, 이슬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처럼 쟁쟁한 작가의 책을 만들어 온 이연실 편집자의 갖가지 경험을 읽는 동안 그때의 내가 참 많이 생각났다. 이렇게 대단한 작가들과 편집의 전문가가 만들어 내는 출판 시장에 덥석 뛰어든 무모한 도전이 아찔하면서도 한편으론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책이 조금 일찍 출간됐다면 나도 편집자님처럼 깨끗한 교정지를 펴고 '제목 찾기 여행'을 떠났겠지. 만약 그랬다면 덜 방황하고 더 근사한 제목을 만났으려나. 편집자님처럼 나만의 갤러리를 풍성하게 채워뒀다면 더 아름다운 표지를 입지 않았을까. 10번의 교열과 윤문 후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을 물리치고 한 번 더 고민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내 책의 운명은 조금이나마 달라졌을까. 이 책에서 책의 탄생 과정을 따라갈 때마다 셀 수 없는 '만약'과 마주했고 번번이 작은 후회가 찾아왔다. 나의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은 변함없지만 그것이 나만의 최선은 아니었을까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남았다.


책의 타고난 운명을 믿으면서도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1%라도 높이기 위해 마지막까지 '한 끗'을 고민하는 편집자. 진정성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결과 바닥을 드러내야 하는 작가. 이기적이고 철없는 작가와 드넓은 애정으로 뭉친 편집자가 만들어내는 '부루마불’ 같은 책의 세계. 그 세계를 오래 걸어갈 모든 분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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