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술>을 읽고-
“여기요. 반쇼코라는 술, 온더록스로 마실 수 있을까요?”
반쇼코라는 이름 아래에 “에도시대의 문헌을 토대로 재현”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토록 매력적인 카피라니.
“아, 네.”
여자 주인이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곧장 수긍하고 술을 준비해준다.
이럴 때 “네? 술을 드실 건가요?”라고 되묻지 않는 것도 낮술을 마실 식당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쇼코는 어른이다. 어른에게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P14
#낮술#하라다히카#김영주옮김#문학동네
추석날 다쳤다. 2층 계단에서 내려오다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너무 아파서 바닥에 벌렁 누워 엉엉 울었다. 통증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아 겁이 났지만 시댁 식구들 코앞에서 넘어진 거라 창피한 마음에 무리해서 일어났다. 불편하게나마 걸을 수 있어서 어찌어찌 명절 미션을 마쳤고 연휴가 끝나고서야 병원에 갔다. CT를 찍었고 꼬리뼈에 금이 갔다는 결과를 들었다. 심상치 않은 통증에 예감은 했지만 막상 확인받으니 꾹꾹 눌러왔던 아픔이 몸과 마음으로 마구 밀려왔다.
서거나 걷는 것은 물론이고 앉거나 눕는 어떤 자세도 통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열흘 정도 입원했고 퇴원 후에도 꼼짝할 수 없는 매일이 이어졌다. 그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갑갑했고 창밖의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노라면 아쉽고 속상하고 서운하고 쓸쓸했다.
몸과 마음의 리듬이 끊기면서 제대로 먹거나 소화시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고 시간이 갈수록 속도 맘도 허기졌다. 그런 내 눈에 거품 가득한 맥주 한 잔과 카이센동이 그려진 이 책의 표지가 들어왔다. 외출도 한 잔의 술도 불가능한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 같았다. 책으로나마 맛있고 근사한 뭔가를 나에게 대접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 책의 쇼코를 만났다.
이혼 후 딸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가 된 쇼코는 누군가의 밤을 지키는 일을 한다. 다른 이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일을 마치면 근사한 한 끼 식사와 낮술로 수고한 자신을 칭찬하고 깊은 낮잠(?)을 청하는 일상을 보낸다. 그녀가 만나는 고객들도 저마다 남다른 사연이 있었는데 그것이 쇼코 자신의 상황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게 뻔하지 않아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해답을 찾는 과정도 과장이나 작위적인 느낌이 없다.
현실감이 굉장해서 쇼코와 함께 밤을 보내고 두리번거리며 식당을 찾고 낮술 첫 모금에 짜릿해하다가도 딸 생각에 이내 침울해지는 모든 감정이 나의 것처럼 느껴졌다.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쉽게 그려졌고 이 책에 등장한 식당과 메뉴도 지극히 사실적이라 씹고 맛보고 즐긴 기분이다. 알고 보니 모두 실제 있는 곳이란다. 역시나….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가고 싶지만 완치까진 아직 시간이 필요하니 집콕 생활을 좀 더 견뎌야 할 듯싶고 망할 코로나는 할많하않…
읽는 내내 쇼코의 곁을 지킨 소꿉친구처럼 이 책으로 나를 위로한 책벗 생각이 났다. 덕분에 마음의 허기를 든든히 채울 수 있었다고, 언젠가 쇼코가 다녀간 그곳에 우리도 함께 가자고, 낮술을 기울이며 오늘을 이야기하자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