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상의 나

<책 읽는 삶>을 읽고

by 정희

독서가는 책 읽을 시간과 조용한 환경을 늘 찾는다. 그것도 온 심혈을 기울여 찾는다. 방해받지 않고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을 단 며칠이라도 박탈당하면 자신이 피폐하게 느껴진다. P25


#책읽는삶 #CS루이스 #두란노




열 살 때 존 밀턴의 <실낙원>을 읽고 십 대 중반에는 고전과 현대 작품을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읽었다는 c.s 루이스.


이 책은 아마도 천재였을 게 분명한 루이스가 남긴 ‘독서가와 책 읽는 행위’에 대한 글모음집이다. 어려서부터 독서가 몸에 배어있던 작가는 인물 계보를 적고 여백에 메모하며 읽는 적극적인 독서가였는데 무익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만나면 ‘다시는 읽지 말 것”이라고 적는 단호한 독서가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로 ‘나 이상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꼽으면서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넓히고 깊어진 사람들에 비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가 너무 작다고 말한다. 나도 일부 동의하지만 다소 경솔한 일반화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생각의 넓이와 깊이가 확장되는 건 맞지만 책에만 매몰돼 세상의 변화와 현실적 한계를 외면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누군가에게서 남다른 성숙을 발견했을 때 그의 가방 깊숙한 곳엔 책이 있었다는 정도가 독서에 담긴 의미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치 책을 많이 읽어야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모두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일맥상통한달까.


물론 완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생각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한다. ‘문학적 경험은 개성이라는 특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개성이 입은 상처를 치유해 준다’는 문장은 내 삶에서 이미 경험한 일이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가장 크고 값진 효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요즘, 올해는 정말 원 없이 많이 읽었다는 걸 실감한다. 궁금해서 읽고 꼼짝할 수 없어서 읽고 수업을 위해 읽어야 할 때도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시간은 ‘나 이상의 나’를 그려보게 했고 상처에 집중하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다.


좋은 책의 관건은 몇 권을 독파했느냐가 아니라 몇 권이 당신을 독파하느냐에 있다고 모티머 애들러는 말했다. 나는 영민하지 못한 독서인이라 독파는 둘째치고 기억도 감동도 시간 속에 우수수 날려 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 몇 권은 나를 통과하면서 변치 않는 뭔가를 남겼겠지…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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