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고부 일기>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를 읽고

by 정희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남이 보지 않으면 살짝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는 말을 아프게 이해하고, 또 모른 척할 수 있다. P20


#나는언제나당신들의지영이 #배지영 #책나물




결혼 첫 해, 시어머니는 내게 책 한 권을 건네셨다. 제목은 ‘고부 일기’

책과 함께 남긴 말씀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을 단숨에 읽고 난 뒤 남은 생각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도 이런 글 써야지’

평소 책을 즐겨 읽었지만 내가 창작할 생각은 감히(?) 해본 적 없었다. 당돌한 생각에 나조차도 놀랐지만 그 생각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시 나의 시집 적응기가 힘겨운 탓인지, 어디에라도 털어놓고 싶은 말 못 할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머니가 건네주신 책 한 권이 나도 알지 못한 은밀한 욕구를 알아차리게 한 것만은 분명했다.


이후 한 꼭지씩 차곡차곡 글을 남겼다…….. 면 참 좋았겠지만 임신, 출산, 육아라는 쓰리쿠션에 치이며 20여 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났다. 그사이 지난날의 이끌림대로 독립출판 에세이를 펴내 ‘내 책 한 권’이란 결과물을 품에 안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잊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라는 책을 본 순간 잊었던 그때 그 마음이 냉큼 떠올랐다. 배지영 작가를 애정 가득 바라봐 준 친정엄마와 시아버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며 ‘고부 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1996년 출간된 ‘고부 일기’는 책장에 고이 꽂혀있었는데도 세월을 고스란히 품은 채 바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린 새댁도 낡고 영악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리라.


20세기 고부 일기는 잠시 뒤로 하고 21세기 ‘부모 일기’라 할법한 배지영 작가의 ‘나•당•지’부터 펼쳤다. 자식들에게 무엇이든 ‘보여주고 싶어 한’ 친정엄마 조금자 님과 ‘들려주고 싶어 한’ 시아버지 강호병 님의 이야기가 절반씩 차지한 이 책은 예상처럼 작가가 받은 사랑으로 묵직하다. 가족에 대한 오에 겐자부로의 말이 무색하게 ‘우리 배지영이’를 향한 어른들의 자부심과 애틋함은 늘 한도 초과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해불가냐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내가 혹은 우리가 누린 그것과 닮아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일이 이러코 기쁠 수가 없다이.” 라며 웃는 조금자 엄마를 따라 웃게 되고 첫딸에게 첫사랑 이름을 따서 짓는 강호병 아빠의 낭만은 근사하게 여겨진다. 작가가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그리여. 걱정허들 말어.”는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전하는 주문 같아서 읽는 내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누군가는 받은 사랑을 이렇게나 꼭꼭 씹어먹어 피와 살이 돌게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받은 상처가 커서 되새김질만으로 피와 살이 얼기도 한다. 부모의 자녀사랑이 당연하다는 건 이미 신화가 됐으니 말이다. 게다가 결혼으로 얽힌 새로운 가족에게 끈끈한 정을 기대하는 건 성급한 꼰대의 비현실적 바람이기도 하니까. 이렇게나 절절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 삐딱함을 버리지 못하는 건 상처를 곱씹는 못된 버릇 탓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이런 사랑이 디폴트가 될 수 없음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은 사랑의 부피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드린 사랑보다 되돌아온 사랑이 언제나 컸다. 부모님들의 배려와 인내가 없었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한다. 살가움과 서운함 사이를 오고 간 20여 년, 다시 읽는 고부 일기는 어떤 느낌일까. 옛 기억이 떠올라 부아가 치미는지, 순진했던 내가 안쓰러울지 모르지만 순간마다 서로를 견뎌낸 시어머니와 나를 자주 토닥이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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