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읽고
"그때부터 나는 만들어진 내가 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몰두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될 수 없는 것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p70-71
흥미로운 제목에 끌려서 저장해 둔 책이다. 역시 에세이는 제목 장사가 맞다는 걸 실감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곤 집어왔는데 작가 이름이 낯설지 않다. 이력을 보니 얼마 전 읽은 시집의 시인이다.
그간 읽은 시인들의 산문은 '너무 좋거나 너무 난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산문은 시인 특유의 탁월한 은유와 본 투 비 시인 같은 시선이 돋보이지만 아주 이따금 딴 세상 이야기만 늘어놓은 산문도 눈에 띄니 말이다.
이 책은 보기 드물게 적당히 소소하고 때때로 깊다. 한 번에 피식 웃게 만들고 여러 번 꼭꼭 씹어 읽게 만든다. 범접할 수 없는 시인의 영감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한 번?' 이런 마음이 들게 한다.
얼마나 살지 알 수 없지만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꽤 달려왔다. 아무리 우겨도 이젠 더 이상 젊지 않다. 나이 먹는 것도 반갑지 않은데 작년 내내 아팠다. 죽음을 떠올릴만한 병과 통증이 아닌데도 나이가 주는 우울은 삶의 끝을 상상하게 했다. 지금 죽는다면 그 순간 어떤 아쉬움이 남을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것을 조금씩 시작했다. 1년 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것을 지금의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도전하는 중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시작하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자고. 그 기록은 1년 후, 5년 후, 10년 후 지금의 시도가 바꿔놓은 나를 확인시켜줄 것이다. 지금의 시작을 참 잘했다고 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미련은 남지 않겠지. 내가 되고 싶은 것도 내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닌,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스스로 응답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