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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서야

<작가의 목소리>를 읽고

by 정희


선거를 하루 앞둔 오늘, 후보들의 선대본부에서 내놓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상대 당 후보나 관계자의 표정을 보면 여론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게 참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이 가능한 거라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오리무중 속 같은 요즘에도 확실한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이 책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다. 작가님의 피드 몇 개만 읽어도 순조롭게 판매되는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데다 피드에서 묻어나는 작가님의 들뜬 기분은 표정 운운할 것도 없이 순항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어쩌다 보니 작가님의 책 4권을 모두 읽은 열혈독자라서 알라딘의 판매지수를 보지 않아도(사실 볼 줄 모름) 출간 후 작가님의 반응만으로 신간과 관련된 어지간한 짐작이 가능했던 터라 요즘 작가님 피드를 보며 함께 신나하는 중이다.


사실 이번 책은 출간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 다만 그간 출간한 책들과 ‘글쓰기’라는 소재가 겹쳐서 작가님이 하고 싶은 얘기가 중복되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했다.(혹시 나 뭐 됨? ㅋㅋ)


그래서 책을 받자마자 목차부터 훑었는데 내 기우는 역시나 쓸데없었다. 작가의 목소리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각 장의 제목(헛소리, 쓴소리, 단소리)은 눈과 귀에 쏙 각인되고 ‘들어가는 글’부터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스스로를 무명 글쟁이라고 한껏 낮추었지만 글에서만큼은 자신감이 넘쳐서 때론 뼈 때리는 각성을 일깨우고, 허튼소리인 듯 말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견디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담았다.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는 것, 누구라도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실도 출간을 위해 작가님이 거쳐간 과정과 특유의 문체를 거치고 나면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합평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면서도 합평이 품은 양날의 검을 포착하고 작가가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을 보면 ‘어, 뭐야 이경 작가님 이런 통찰력도 있는 분이었어?’ 하며 난데없는 배신감(?)에 휩싸이게 된다.


“글쓰기는 힘듭니다. 지금 이 책을 보고 계신 분들도 대부분 글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런저런 책을 찾다가 결국에는 이런 무명의 글쟁이가 쓴 책까지 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힘든 과정을 버텨내고 꾸역꾸역 몸과 정신을 망가트려가다 보면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 텐데, 이때가 되면 이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이루지도 못할,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정신이 말짱할 때 빨리빨리 그만두시길 바랍니다.” p208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하겠다며 너스레처럼 이런 문장을 늘어놓아 확 정신 들게 만들다가도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자, 이제 네 차례야’ 하며 등을 슬쩍 밀어준다.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이는 문장들은 작가님 고유의 문체가 되어 어느 지면에서 만나든 작가님을 알아채는 열쇠가 되어줄 듯하다. 책 4권 만에 시그니처 같은 확고한 스타일을 구축하다니, 그 어려운 걸 참 쉽게 이룬 듯 보이지만, 나는 어쩐지 잠 못 이룬 수많은 밤이 느껴져서 내 일처럼 기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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