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예요. 전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도 그 책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러니 기억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 P57
동네서점, 책, 커피, 독서모임… ‘휴남동 서점’엔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친밀한 것이 한가득이다. 커피 향기에 취하고 책장 넘기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 상처를 드러내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 보기 드문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의 결핍과 상실은 연대의 힘으로 채워지고 캄캄한 미래는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특별한 무엇을 하지 않았는데도 공간이 주는 온기와 그곳 사람들의 다정은 마법 같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 힘과 마법을 믿고 싶은 수많은 독자가 이 책을 찾았다. 재미는 물론이고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는 리뷰도 넘친다. 나 역시 이 책이 주는 평온함이 좋았고 나와 닮은 등장인물에게선 찡한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작가도 언급한 ‘베스트셀러’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민준의 친구 성철이 말한 ‘300만 관객’이 1000만 영화를 만든다는 주장에 반박보단 수긍이 앞선다. 어떤 궤도에 오르기만 하면 탄력이란 걸 받게 마련이고 그 궤도에 오르는 요인은 작품 바깥의 노력과 운에 좌우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 천 부도 팔리지 않았다거나 너무 좋은 책인데 금방 잊히는 삭막한 현실을 확인할 때면 그 한 끗이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 책은 특별한 사건이나 독특한 인물처럼 베스트셀러의 조건이라 할만한 걸 내세우지 않았지만 충분히 주목받고 있다. 오히려 그 이유가 좀 더 많은 삶에 접점을 만들고 읽는 이의 공감을 끌어낸다. 쉬운 해결과 기다렸다는 듯 변화하는 인물에서 개연성을 의심하다가도 녹록지 않은 현실을 버텨내는 독자에겐 판타지 같은 희망이 된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독자라는 거대한 다수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지 생각하게 된다. 농축된 사유, 벼리고 벼려낸 문장, 자극적인 사건과 인물은 너무 멀어서 때론 버거운 것일까. 그래서 순한 마음을 건드리는 부드러운 바람을 만나면 여지없이 마음이 풀어지고 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