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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아이라는 숲>을 읽고

by 정희




100번째 어린이날. 아침부터 길 건너 호수공원이 북적였다. 오후엔 행사가 있는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편도 4차선 길은 죽 늘어선 주차 차량으로 금세 3차선이 되었다. 창밖을 보니 잔디밭엔 돗자리가 즐비하고 놀이터엔 꼬물거리는 아이들과 가족이 한가득이다.


어린이날이니 집에 있을 순 없었겠지. 뭐 특별한 걸 해주진 않아도 아이들에게 즐거운 순간과 기억을 선물하고 싶었을 거다. 젊은 부모들의 순수한 열정과 체력이 그저 부럽고 아름답다. 두 아이를 다 키워놓은 나는 그 열기와 웃음이 좋아서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창 아이들 키울 땐 도대체 언제 다 크나, 신경 쓸 건 왜 이리 많은지,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기다리는 육아와 교육의 과제가 버거워 매일 우는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다. 남들 다 한다는 ‘우리 아이 천재?’에 빠진 적 없는 나름 객관적인 엄마였지만 내가 몰라서, 내가 귀찮아서 안 하거나 못하는 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늘 뭔가 분주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육아와 교육에서 내 기준과 온전한 멘탈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팔랑귀를 잠재우고 불쑥불쑥 치고 올라오는 욕심과 매일 싸웠던 시간.


그때마다 나는 책 속으로 숨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 <부모와 아이 사이>를 읽으며 소나기를 피했다. 책 속에서 정답을 찾기보다 내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고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열띤 마음을 식히자 육아와 교육의 최종 목표인 ‘아이의 완전한 독립’이란 골대가 점점 크고 넓어졌다.


그렇게 버텨내며 깨우친, 소소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지혜가 가득 담긴 책을 만났다. 저자가 철학하는 엄마라서 그런가? 내가 20여 년 만에 어렴풋이 알게 된 지혜와 통찰이 겨우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작가에게선 확신으로, 경험으로 우러나온다. 구절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깨알 같은 유머를 주워 먹는 재미까지 풍성하다. ‘숲을 곁에 두고 나무만 바라보는 부모를 위한 12가지 철학 수업’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아이에게만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부모 자신의 생각과 삶을 점검해보게 한다.


다름, 공부, 놀이, 경제관념, 공부의 이유, 지구와 세상을 사랑하는 법 등 풍부한 이야기 속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힘든 세상에서 우리를 일으켜줄 세 가지’를 꼽은 마지막 장이었다. 작가는 그 세 가지로 밥 유머 사랑을 꼽았고 그 이유와 사연을 읽다 보면 눈물이 핑 돌면서 손에 꼭 쥐고 가야 할 단단한 뭔가가 선명해진다.


내 아이의 행복한 추억을 위해 하루 종일 고단했을 부모들이여, 마지막 힘을 내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364일도 어린이날이 되는 선명한 태도를 배우고 ‘양육’이라는 버거운 짐 속에서 빼내도 괜찮을 것들을 발견하며 그럼에도 반드시 가르쳐야 할 소중한 가치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라는숲 #이진민 #웨일북스


인생은 아름다우면서도 아름답지 않다. 인생이 아름답지 않을 때, 그래도 그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평생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있다면 나에게는 유머다. 나는 웃긴 사람이 좋다. 우스운 사람 말고. 둘은 언뜻 비슷하게 보여도 마치 설탕과 소금처럼 다르다. 웃긴 사람은 즐겁고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우스운 사람은 안타깝고 조금 바보 같은 사람이다. 결정적으로 둘의 차이는 품위 유무에 있다.(…) 웃음에까지 품위라니 세상 참 힘들게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일에 어떻게 웃는지, 무엇으로 어떻게 웃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품위란 우아하게 입을 가리고 웃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내용의 경쾌함에 관계되는 말이다. 나는 유머 감각을 편안한 티셔츠처럼 걸친 사람들 속에서 웃기는 아줌마, 잘 웃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 P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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