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인사>를 읽고
나는 노트를 펼쳐 적었다. ‘외로운 소년이 밤하늘을 본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나에게 이 소설의 인물들은 언제나 그런 이미지였다. 혼자이고, 외롭지만 어떻게든 이 고통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이유를 찾는 존재들. 그들이 이제 내 손을 떠나고 있고, 이제 이런 이야기는 다시는 못 쓸 것 같다. P304 - 작가의 말
. 한동안 꿈자리에 외간 남자들이 들락거렸다. 그들에게선 구 씨가 염미정을 바라볼 때 마냥 뿌연 후광이 비쳤고 큰 의미 없는 이야기 사이로 시간은 느리고 평화롭게 흘러갔다. 타고난 ‘잠력’으로 꿈 없이 달게 자던 나에게 며칠째 대체 무슨 일인지… 등장인물로 짐작건대 잠들기 전 머리맡에 틀어놓은 ‘빨간 책방’ 탓(덕분)이 분명했다. 약간의 기대(?)를 안고 김영하 작가 편을 듣다 잠든 밤, 어김없이 꿈에 나타난 작가님의 모습과 기억은 사라졌지만 예의 바른 목소리만큼은 오래 남았다. 사람이 죽으면 가장 마지막에 사라지는 감각이 청각이라는데 역시 청각이 가장 힘이 센 걸까? 어쩌면 무의식도 조절 가능한 영역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부유하는 며칠을 보냈다
그렇게 2013년에 녹음한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듣고 9년 만에 발표한 신작을 읽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시간의 간격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에도 작가님은 얼리어답터 같은 이미지처럼 아이맥을 비롯한 신문물에 능했고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도 앞장서서 경험해보고 있었다. 뭔가를 배우는 것에 겁내지 않았고 새로운 시도를 결정하는 것도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것이 막연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님의 통찰을 발견했다면 지나친 팬심일지 모르겠으나 소통의 방향과 적극적 독자의 존재, 누구든 마이크를 쥘 수 있는 매체의 변화를 짚어낸 것에선 남다른 시각이 분명 엿보였다.
그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인 듯 모든 것이 막힌 팬데믹 상황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갈 곳 잃은 북러버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고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이면이 담긴 작품까지 선사했다. 9년을 점프하듯 훌쩍 뛰어넘은 작가님의 소소한 변화는 알 길 없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작가님이 천착한 질문만큼은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받아 들게 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p69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P135
‘선이가 충분히 인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충분히 인간이란 말인가.’p283
그렇게 받아 든 질문에 답을 고르는 사이, 이동진 님의 영화 프로그램에서 ‘애프터 양’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안드로이드 인간 ‘양’의 메모리 뱅크에 얽힌 이야기였는데 ‘작별인사’의 등장인물과 소재가 많이 떠올랐다. 일단 시작부터 하자는 마음으로 펴 든 책은 단숨에 읽을 만큼 가독성이 여전했지만 독자에게 건네는 선명한 질문에 답을 찾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질문의 타이밍이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끝끝내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 요인은 무엇인지, 지구를 위해 인간은 사라져야 할 존재인지, 정녕 그것만이 방법일지, 궁금한 것이 끊이지 않았다.
얼마 전 최재천 교수님은 한 방송에 출연해서 “인간은 만 년 전 전체 동물 중 1% 미만을 차지했으나 현재 인간과 인간의 가축이 차지하는 비율은 96-98%에 이른다”고 말했다. 남다른 통찰로 세상을 보는 김영하 작가에게 이런 세상은 어떻게 비쳤을까. 위험을 경고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을까.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아가는 이들이 어리석게 느껴졌을까. 다소 장황한 해석이나 설명 투 문장에서 대중을 향한 안타까움이 느껴져서 처음으로 9년이란 시간의 흐름이 체감되기도 했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은 이미 잘 말해진 완결된 자연이라며 우리가 소설에 대해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보탠다 해도 그 소설을 앞설 수 없다고 했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리뷰나 서평은 ‘영원히 과녁에 도달하지 못하는 화살’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없는 나의 꿈 이야기나 지나간 상념을 떠든 건, 혼자라서 외로운 우리에게 보낸 작가의 인사에 소박한 답을 하고픈 마음이었다. 작가를 떠난 이야기가 어떻게 뿌리내리고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 함께 나눌 이야기가 어느 때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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