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 Aug 08. 2022

쓰는 일상에 필요한 것은

<김봉현의 글쓰기 랩>을 읽고



예전에 한창 독서수업할 때 일이다. 그땐 매달 20권이 넘는 동화나 청소년 소설을 읽어야 했다. 그렇게 한 5년 정도 읽다 보니 ‘이런 동화는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착각을 하게 됐다. 읽은 책이 쌓일수록 착각도 함께 쌓여 급기야 나는 동화창작 수업에 등록하고 만다. 2012년 가을이었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는 놀라운 일은... 역시나 남의 일이었고 당연한 일이지만 겨울이 오기도 전에 그 말도 안 되던 착각은 무참히 깨졌다. 함께 시작한 동료의 글에 감탄할 때마다 어쭙잖은 교만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내 글을 지을 때마다 고스란히 드러난 내 바닥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든든한 동료 덕분인지, 예상보다 뜨거운 내 안의 열망을 확인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더 잘 쓰고만 싶었다. 글쓰기의 끝이 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끝을 보고 싶었다.


끊임없이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기관에서 하는 동화창작 과정을 찾아 배움을 이어나갔다. ‘동화’라는 갈래와 ‘창작’이라는 기본이 같았기 때문에 두 기관의 수업은 이론적으로 특별한 차이가 없었지만 습관적으로 출석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오고 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뭔가 열심히 한다는 위안거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뜨거운 분위기에 나를 담그고 그저 취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에 참여하는 것보다 몇 줄이라도 내 글을 쓰고 지우고 다듬는 시간이 절실했지만 그건 너무 고된 일이라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과제 제출이란 강제가 계속 쓰게 만들거라 기대했지만 누군가의 평가에서 나를 보호할 만큼 마음의 힘을 기르지도 못했다.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지금 나는 동화가 아닌 산문을 쓰고 있다. 여러 길을 돌고 돌아 매일 혼자 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객관적인 평가가 고플 때나 지친 마음을 이끌어줄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도 많다. 혼자 쓴다는 건 한껏 자유로우면서도 자주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전 동화를 쓰면서 나는 이미 체험했다. 창작은 고독한 개인의 일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적절한 조언을 얻을 때도 있지만 조사 하나도 결국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쓰는 일상에 필요한 건 ‘수업’이 아니었다. 이미 배워서 다 안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다. 부족한 집중력과 체력을 잘 알기에 다른 것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흩뜨러트리기엔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에너지를 흘리기보다 알뜰하게 모아 노트북 앞에 나를 앉히는 것. 엉덩이로 쓰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것을 매일 하는 힘은 고독에서 나온다.

     

물론 막막한 순간이 오는 걸 막을 순 없다. 하나의 지점을 향해 너무 돌아가는 건 아닌지, 일의 순서를 가다듬고 싶거나, 불필요한 걱정을 피하고 싶을 때가 종종, 솔직히 말하면 자주 있다. 그럴 땐 다른 작가들의 노하우를 펼쳐 든다. 수업을 듣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고 불필요한 부분까지 듣지 않아도 된다. 좋은 글쓰기 책은 신기하게도 지금 내가 답답한 바로 그 부분을 짚어준다. 몸에 필요한 영양분에 따라 끌리는 음식이 달라지듯 글쓰기 책을 읽을 때도 본능이 작용한다.     


이 책은 15년 차 전업 작가가 쓴 글쓰기 피드백이다. 글쓰기라는 막막하고 끝없는 길을 선택한 이가 알아두어야 할 기본 중에 기본을 콕콕 짚어준다. 쓰기 위해 알아야 할 요긴한 문장이 빽빽하다. 내 글을 읽어본 적 없는 분의 피드백인데도 내 글에 꼭 필요한 조언을 발견하게 된다. 쓰는 이의 멘털을 잡아준다는 미명 아래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런 책이 아니다. 쓰기로 했다면, 쓸 작정이라면 견디고 지켜야 할 큰 중심과 작은 디테일을 예로 들어가며 직설적으로 조언한다. 하지만 그 직설이 마냥 아프지는 않다. 표지에 강조한 것처럼 쓰는 이와 그의 작품에 대한 디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과 정성을 담은 피드백이며 좋은 글을 만들어 함께 읽고 싶은 동료 작가이자 독자로서의 응원이다. 이제 막 쓰기 시작한 분이나 혼자 쓰는 막막함에 지친 분께, 내 글에 빠진 뭔가를 찾고 싶어서 그럴싸한 수업을 찾아 헤매는 분께 이 책을 권한다. 15년의 내공과 글쓰기의 기본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역사는 그들을 저버렸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