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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Aug 01. 2022

역사는 그들을 저버렸지만

<파친코 1>을 읽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인스타 세상을 들락거리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개인의 관심분야에 따라 제철 채소이거나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 혹은 핫플일  있을 텐데 나의 경우엔 책과 관련된 소식이 그렇다.


이따금 문학계의 이슈이나 판권 등의 소식을 접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시기에 우후죽순 올라오는 책 리뷰로 알게 되는 출간 소식이다. 출간 후 2주 동안의 홍보와 마케팅이 그 책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는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2-3주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지면 그 자리를 다른 책이 차지한다. 처음엔 일부러 찾아보는 수고 없이 자연스럽게 신간 소식을 알게 되어 좋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차이를 두고 올라오는 비슷한 책 소개 문장과 대동소이한 감상을 연거푸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지루해지고 그나마 갖고 있던 호기심이 사라지는 타이밍이 온다.


그래서 리뷰 관련 DM을 받으면 내가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인지, 이런 부탁이 아니어도 읽을 생각이었는지 여러 번 생각하고 결정한다. 제안받은 책을 읽고 싶을 때가 대부분이고 많은 리뷰어의 글에 솔깃해지지만 그 대열에 함부로 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질 때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알게 된 뒤로는 더더욱 신중해졌다. 개인적인 감상 몇 줄이 누군가의 관심을 끊어버릴 수도 있으니 때로는 거절이 가장 큰 존중일 수 있는 것이다.


첫 줄에 협찬 도서라는 해시태그를 떡하니 달고서 이렇게 시작하는 건 좀 멋쩍은 일이지만 평소 가졌던 이런 생각을 단번에 물리칠 만큼 이 책은 정말 읽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이 책을 구하려고 기회를 엿보았지만 도서관마다 대출과 예약은 꽉 찼고 출판사 계약 만료로 절판되어 구입도 어려워서 궁금함만 더했다. 다른 도리가 없어 재출간된다는 7월 27일만 기다리던 7월 초, 인플루엔셜로부터 리뷰 제안 디엠을 받았다. 잠시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책이 도착한 뒤론 흥미진진한 내용을 단번에 읽고 싶은 마음과 오랜만에 만난 소설의 재미를 며칠은 누리고 싶은 마음이 계속 싸웠다. 매일의 작업을 내던지고 이 소설에 풍덩 빠져들고 싶을 만큼 훈과 양진, 선자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한 꼭지가 마무리될 무렵 다음 이야기를 한껏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다음 꼭지 맨 앞에 속시원히 밝히는 두괄식 구성도 패기 넘쳐서 좋았다. 독자의 궁금증을 볼모 삼아 질질 끌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멱살을 단단히 잡아끄는 이야기의 힘이 실로 대단했다.


이민진 작가는 전업 소설가가 되기 위해 1995년 변호사를 그만두었지만 2007년에야 첫 소설을 발표했고 이후 10년이란 긴 시간을 더 보낸 2017년에 <파친코>를 출간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뜸이 들어서일까. 소설 속 ‘양진’이 가족을 위해 정성껏 끓여낸 곰탕처럼 긴 시간 푹 우려낸 문장과 살아 숨 쉬는 등장인물은 진하고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시대와 상황이 비슷한 <내 어머니 이야기>의 뭉클한 감동도 함께 떠올랐는데 그렇게 시대가 준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빚진 마음이 얼마간 남는다. 역사가 저버린 시대에서도 각자의 인생에 최선을 다했던 등장인물을 들여다보며 갚을 수 없는 부채감을 다시 상기한다. 이후 그들이 겪어낼 한국전쟁과 재일교포로서의 삶은 분명 고단하겠지만 그것을 통해 전하고자 한 작가의 메시지에 끝까지 귀 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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