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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Oct 28. 2022

프롤로그

시작을 시작합니다

             

오래전 읽은 책에서 나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는 계산법을 보았다. 평균 수명을 80세로 잡았을 때 내 나이는 하루의 어디쯤을 지나는지 가늠해보는 것이었다. 처음 그 내용을 보았을 때 나는 마흔이었고 그 나이는 정오의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마흔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남아 있어서 무엇을 꿈꾸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오후 3시 위를 걷고 있다.     

     

오후 3시.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긴 뭣하고, 그렇다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닫기엔 애매한 그런 시간이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다가도 밤이 올 때까지 손 놓은 채 지내기엔 남은 날이 아까운 어정쩡한 시간. 나는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오후 3시에는 여전히 선명한 햇살과 밤을 당기는 서늘한 바람이 공존했다. 하지만 나는 오십에 들어서자 포근한 햇살보다는 길어진 그림자와 파고드는 바람에 시선을 빼앗겼다. 새로운 시작보다 마무리가 편해졌고 올라가기보다 안전하게 내려오기를 준비하는 편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해온 시작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어떤 시작은 삶의 매듭마다 저절로 찾아오곤 해서 특별할 것도 없었다. 많은 시작은 그만큼이나 많은 멈춤과 단념을 남기곤 했다. 어지간한 신념과 각오에서 비롯된 게 아니면 새해 첫날 쌓인 시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추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쉬운 시작과 그보다 더 수월한 망각과 단념의 반복으로 삶은 그럭저럭 이어졌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두 번의 사고를 겪은 지난 일 년 동안 시작은 일상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시작을 잃고서야 그간 흘려보낸 시작을 상기했다. 값없이 주어져서 공짜인 줄 알았던 시작에는 환산할 수 없는 자유가 숨어 있었다. 시작하는 마음이 선사하는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 설렘, 달라지고자 애쓰는 삶에 대한 애착과 변화의 힘을 알아챘다. 시작하는 마음에는 언젠가 멈추더라도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있었다.     

      

시작의 맨얼굴을 또렷이 마주할수록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다스리는 게 한없이 고됐다. 통증 없이 맞이한 지난날의 아침이 아득해질 때마다 몸의 중심과 함께 마음의 균형도 사정없이 기울어졌다. 새롭게 아우성치는 몸의 통증에 놀라 깨어나면 무엇 하나에도 자신 없는 순간이 이어졌다. 지난하게 이어지는 이 시간을 견딜 무언가가 필요했다. 한없이 늘어지는 몸을 가다듬으며 마음의 요구에 귀를 잔뜩 기울였다.       

    

‘우리의 에너지는 우리가 집중하는 곳으로 흐른다’고 류시화 시인은 말했다. 어떤 단어에 힘주어 집중하면 에너지는 그곳으로 모이므로 ‘아픔’보다는 ‘건강’으로 ‘전쟁’보다는 ‘평화’로 ‘싫음’보다는 ‘좋음’에 집중하자고 한다. 그렇게 충만한 에너지를 아름답고 위대한 것을 발견하는 재능으로 쓰자고 말한다. 그 문장은 통증과 무력감이란 부정의 에너지에 잠긴 나를 건져주었다. 회복과 가능성에 집중하면서 긍정의 에너지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시작의 힘은 발휘된다는 깨달음에 가닿자 회복을 위해 할 것이 줄줄이 떠올랐다. 사고가 남긴 마음의 무늬를 따라가다 보면 나를 위한 삶이 보다 선명해졌다. 버려진 듯 흘려보낸 시간을 보상하듯 다가오는 순간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가리라 마음먹었다. 부릉부릉 마음의 시동이 걸렸다. 사소하지만 나를 일으켜 세울 작은 시작을 일상이란 카트에 담았다. 그렇게 수집한 시작의 설렘을 이곳에 풀어놓는다. 나의 시작이 당신의 마음에도 작은 파동을 일으킨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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