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 Dec 11. 2022

작가가 보내온 긴 편지

<일기>를 읽고


소설을 쓰며 살다 보면 문학이란, 하고 묻는 질문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이미 있는데 하필 왜 있느냐고 물어 멈추게 만드는 질문을. 누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나는 일단 그를 의심한다. 개수작 마, 하고 실은 생각한다. 그 질문을 생각하느라고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읽거나 쓸 수도 없어 사는 걸 그냥 중단하고 싶은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을 내게 묻지 않는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렇게 묻는 이를 만나면 너는 실은 내 원고나 내 싸움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너의 싸움에서 네가 스스로 찾지 못한 대답을 내게서 가져가려는 것뿐이다, 하고 생각하며 그를 잘 봐 둔다. P142     


-


뜨거운 여름에 날씨만큼이나 절절 끓는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다. 단순하지만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일기’라는 제목처럼 작가의 면면을 많이 알게 했고 그만큼 사색하게 만든 글이었다. 그때 남긴 필사 문장을 다시 읽으며 작가가 독자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어떤 관계에서 무슨 모습으로 얽혀있든, 수많은 역할 속에서 어떤 포지션에 있든 상황과 힘듦을 이겨내는 단 하나의 방법은 끝끝내 자신을 믿는 것이라는 작가의 긴 편지를 받은 느낌이다.      


엊그제 ‘알쓸인잡’에서 김남준 님이 했던 이야기가 콕 박힌 뒤라서 본능적인 주목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솔로 앨범을 낸 그는 우상이었던 아티스트만큼 랩을 잘할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들보다 탁월하지 못하다면 굳이 앨범을 발표할 이유가 있을지, 그저 동료들과 함께 듣고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우상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모서리’, ‘자기만의 주파수’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그 순간을 이겨냈다고 한다. 천하의 RM도 그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위안이 됐다. 많은 창작자들이 빠져드는 개미 소굴이 바로 그런 의심이다. ‘뭐 굳이 나까지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 말이다. ‘내 싸움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본인의 싸움에서 찾지 못한 대답을 나에게 구하는 타인을 잘 봐 둔다’는 작가의 문장은 그래서 통쾌하다. 그 유심한 시선이 나에게도 머물러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일기#황정은#창비#알쓸인잡#RM

작가의 이전글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