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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Dec 22. 2022

하다 보면 닿아 있다

<하는 사람의 관점>을 읽고

       



처음 독립서점을 방문한 날도 추운 겨울이었다. 큰 유리문을 닫고 들어서자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것 같은 생경한 기분에 휩싸였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은 서가 사이를 고양이처럼 걸었다. 얇고 작고 투박하지만 뾰족한 책들이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만 잡동사니가 쌓여있던 어린 시절 다락방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지금은 대형서점과의 경계가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독립서점은 정말 ‘독립’적이었다. ISBN이 없어서 그곳에 가야만 발견할 수 있는 책이 대부분이었다. 서점의 컨셉과 서점장의 취향에 따라 비치된 책도 달라서 마음에 드는 책이 눈에 띄면 바로 사야 했다. 다음을 기약했다간 금세 절판되는 레어템이 대부분이었다. 그 세계의 매력에 빠져 다락방 드나들 듯 오가다가 이 책의 작가가 쓴 <비행기 모드>라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      


그 뒤로 5년쯤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독립출판물로 인기를 끈 작가 중에는 기성 출판사를 통해 인지도 있는 작가로 변신한 분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꽤 알려진 지금까지도 독립출판물을 주로 출간한다. 자신의 책 출간을 위해 임시 제본소라는 1인 출판사까지 꾸렸다. 그간 출간한 작품이 어림잡아 20여 권. 독립출판 에세이 한 권을 만들기 위해 2년 가까이 붙잡고 끙끙거린 나로서는 놀랍기만 한 창작력이다. 지금까지 강민선 작가의 작품을 총 3권 읽었는데 ‘시간을 많이 쏟을수록 글이 나아진다는’ 작가의 말을 증명하듯 이번에도 좋은 문장이 많았다.


임시제본소의 1년 매출을 공개한 부분이나 독자의 리뷰에서 발견한 ‘뒷담화’라는 단어에 번민하는 모습에선 작가의 현실적인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사서였던 작가의 직업적 배경 덕분인지 ‘너무한 도서관’ 이야기도 무척 공감되었고 아무튼 시리즈 투고를 준비한다며 주제를 고민하는 부분도 재밌는 부분으로 남았다. 개인적으론 ‘솔직함’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라 그런지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지만 독자로서 궁금증이 남지 않게 써내는 작가의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발행부수에 욕심 내지 않고, 서로의 글과 취향을 믿는 20여 개 서점과 꾸준히 거래하는 작가의 조용하면서도 끈기 있는 행보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혼자서도, 제 이야기만으로도 만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아이디어의 시작은 늘 거기부터였다’는 작가의 바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실현되고 있다. 소망을 꿈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사람은 어느 틈엔가 원하는 삶 쪽으로 가 있다.


#하는사람의관점#강민선#임시제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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