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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Dec 25. 2022

나의 도서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를 읽고




‘사서’가 되고 싶다는, 도서관처럼 고요한 공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꽤 오래 사로잡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10년은 훌쩍 넘긴 막연한 소망에서 시작됐다. 전공자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으니 준비가 필요했다. 사서 카페에 가입해 학기마다 ‘사서교육원’의 일정을 검색하고 자격증을 취득할 즈음의 내 나이를 셈해 보곤 했다.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실무자들의 고충과 무척이나 좁은 정규직 사서자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기간제든 대체든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나의 시도를 무산시킨 건 빡빡한 교육원 일정 때문에 한창 진행 중인 독서수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추를 양손에 잡고 저울질하는 사이 시간만 무작정 흘렀다.


얼마 전 인근 도서관에서 ‘육아휴직 대체 사서’를 모집했다. 6개월 기간제로 일주일에 5일, 40시간 근무였고 정사서 자격자를 우대하지만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지원 가능한 조건이었다. 일단 지원이라도 해 볼까 싶었다. 6개월의 실무가 오랜 고민을 명확하게 정리해줄 거라 기대했다. 지원서류를 메모하고 도서관 위치를 검색하면서 김칫국물부터 엄청 마셨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내 모습이 막 상상됐다. 접수일자를 기다리며 미리 공부하듯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접었다.


높은 강도의 업무와 꼭 갖춰야 할 전문성에 놀란 탓은 아니었다. 조직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잘 해낼 수 없을 거란 예감이 너무 컸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했던 납작한 경험은 방대한 사서 업무의 지극히 일부였음을 실감했다. 급격히 나빠진 눈건강, 사고 후 지속되는 통증은 ‘수서업무’나 ‘마크(MARC)’ 업무를 지체시킬 게 뻔했다. 얕고도 얕은 컴퓨터 업무 능력은 말해 뭐 하겠는가. 순순한 단념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좀 더 일찍 이 책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도전했을지, 더 빠르게 단념했을지 알 수 없다. 그저 이제라도 만난 것이 천만다행일 뿐.


이 책을 읽으며 흘려보낸 시간을 돌아봤다. 2012년 글벗에게 사서에 대한 정보를 듣고도 동화 쓰기와 독서수업을 선택한 나. 2019년 이사를 하면서 모든 일을 그만둬야 했을 때, 그 좋은 타이밍에 에세이 출간을 선택한 나. 그리고 2021년 또다시 깊은 고민 앞에 섰고 그 끝을 ‘그런 소망이 있었다’로 마감하는 나. 순간마다 다른 선택을 한 건 ‘나’였다. 결국 간절함의 차이였다. 작가의 말처럼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싶은 마음에 사서라는 ‘신분’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행보를 통해 단독자로서의 삶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저 ‘나’로서 세상과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독립적이고 사적인 영역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에 감사가 깃든다. 더불어 생각한다. 변화하는 나의 상황과 조건을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차가운 공기와 묵직한 고요가 가득한 그곳에 잠시 다녀와야겠다.



#아무도알려주지않은도서관사서실무#강민선#임시제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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