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한 사원은 낡은 손길에 몸을 숨기고
돌상은 묵념에 잠긴다
중생의 눈에는 중생이 무연하니 혜일을 이해할쏘냐
색이 바랜 돌상일 뿐 여전히 돌이고 상인데
무너진들 일어선들 구박에 벗어날쏘냐
여행의 목적은 다양하다. 자연, 유적지, 문화와 예술, 음식, 휴식 등의 복합적인 이유이다.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앙코르와트라는 오직 단 하나의 이유로 오는 이들이 많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은 자연과 친한 도시이다. 나쁘게 말하면 개발되지 않아 교통이나 의료 등의 불편한 점이 있었다. 대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덕분에 마음이 편해진다. 씨엠립의 조용한 숙소에서 한껏 느릿한 하루를 음미하고 고대하던 앙코르와트로 아침부터 향했다. 앙코르와트 주변에는 비슷한 유적지가 아주 많이 있고 하루에 다 보기 힘들 만큼 규모가 굉장히 컸다. 현지인 택시 가이드가 영어를 굉장히 잘해서 각 유적지의 유래와 역사를 심도 있게 들을 수 있었다. 기사님은 캄보디아 정부 부패에 관해서도 강한 비판을 하며 현지인들끼리 이런 얘기를 하면 잡혀갈 수 있을 정도로 자유가 제한되었다고 한탄했다.
캄보디아는 지식인이 몰살되는 킬링필드 사건으로 인해 나라를 발전시킬 동력을 잃어버린 나라로 평가된다. 정부의 부패가 심각했고 이는 사회의 부패로 이어졌다. 공항에서부터 규정 외 팁을 요구하는 일을 겪으면서 부패의 분위기는 이미 직접 체감한 뒤였다. 수많은 주변 유적지를 돌고 정부 비판을 한참 듣고 나자 앙코르와트 유적지 앞에 도착했다. 앙코르와트는 부실한 관리로 많이 낡고 닳아있었다. 불상들은 전쟁과 도난 등으로 인해 사라져 있었다. 근래에는 완전히 방치되었던 이 유적을 조금씩 관리한다고 하여 다행이지만 여전히 많은 곳들이 폐허와 같이 방치되어 있었으며 어느 곳이든 누구나 유적을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건축물의 낡아있는 모습을 보니 퍽 안타깝다. 시간이 지나 폐허에 가까워진 유적지를 보니 어릴 때부터 후원하던 난민이 해적이 되어버렸다던 인터넷 이야기가 생각난다. 비록 앙코르와트에 1원도 후원한 적은 없지만 가장 동경했던 유적지였다.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했다. 그래. 사람도 흙으로 돌아갈 텐데 앙코르와트도 닳고 닳아 흙이 된다면 그것 또한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다만 나는 흙으로 돌아가야 할 짧은 삶의 여행자이고 유적지는 미래의 여행자들을 위해 어느 정도 관리는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낡은 앙코르와트는 어떻게 보면 유명한 유적지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파르테논 신전과 피라미드도 세월에 의해 빛바랜 모습이 우리가 기억하는 현재 모습이듯 앙코르와트도 닳고 지나간 것을 지금의 모습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누군가 노래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