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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라면.

라면을 찾아 아프리카를 어슬렁거리는

한국인을 본 적이 있는가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생

라면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리


라면과 인도양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먹고 싶어지는 한국 음식 중 한 가지는 단연코 라면이다. 아무리 현지 음식에 잘 적응하고 맛이 있어도 라면을 향한 욕망이 참기 힘들 만큼 부풀어 오를 때가 있다. 다행히 한류와 한국 음식의 인기가 높아진 덕분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국 라면을 구할 수 있어 라면이 먹고 싶을 때면 아시안 마켓을 찾아서 먹고는 한다. 라면을 끓여 꼬들꼬들한 면발과 국물 한 수저를 입에 넣으면 없었던 향수병도 사라지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킬리만자로에 도착하여 세렝게티 초원을 누빈 며칠 동안 머핀과 바나나 등으로 대부분의 끼니를 때웠다. 현지 체험을 하겠다고 한인 업체를 거치지 않고 현지 업체를 선택한 자가 받는 벌이었다. 한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통해 사파리 투어를 하면 삼계탕, 김치찌개 등이 식사로 나오는 굉장한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음식까지 세렝게티 본연의 맛을 보고 싶어 현지 업체와 투어를 진행했고 결정의 후회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름 모를 아프리카식 요리와 빵으로 굶주림을 채운 지 사흘이 지나자 어느 때보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졌다. 킬리만자로의 여행자는 하이에나처럼 라면을 찾아다녔지만 아시안 마켓을 찾을 수 없었다. 전 세계에 퍼져가는 한류에도 아프리카 대륙까지 오기에는 조금 멀었나 보다. 라면은커녕 스니커즈나 하리보 젤리 같은 공산품 자체가 매우 비쌌다.


킬리만자로에서 투어를 마치고 다리에스살람으로 돌아와 소고기를 위장에 적셔봤지만 한국음식을 향한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소 안심보다 삼겹살이 더 그리운 모순적인 상황에서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고등학교 친구의 지인이었다. 탄자니아에서 출장 근무 중인 그의 집에는 햇반과 라면 등 고국의 구호물자가 가득했다. 한국음식의 가뭄이 일어난 대륙에서 그의 집은 오아시스였다. 사돈의 팔촌급일 정도로 먼 사람이었고 신세를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라면 앞에서 잠시 변절자가 되어 폐를 끼쳐보기로 한다.


양은냄비까지 구비되어 있는 최적의 조건. 염치없게 라면을 두 봉지나 뜯는다. 물을 끓이고 수프를 넣자 매콤한 향이 코를 뚫고 뇌까지 차오른다. 편하게 먹으라는 지인의 환대 덕분인지 오랜만에 맡는 매콤한 냄새 때문인지 촉촉해지는 눈가 앞에서 끓어가는 라면은 축복으로 가득하다. 면을 넣은 뒤 몇 번이나 휘젓고 싶어 하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으며 인내한다. 하얀 달걀 두 개를 넣고 면 밑으로 조심히 넣는다. 반숙. 적당하게 끓인 면발. 냄비를 들고 테라스로 나간다. 뜨거운 양은냄비 안의 라면과 반숙 계란 그 뒤에는 인도양까지 이어지는 탄자니아의 동쪽 바다. 면을 집어 들자 인도양의 입김이 면을 적당히 식혀주었다. 해풍을 맞아 조금 더 꼬들 해진 면발을 입 가득 넣는다. 짭짤하고 매콤한 향이 쫄깃한 면발의 감각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한 숟갈로는 모자란 국물을 다섯 숟가락 정도 입에 넣자 위장에 묶여있던 아프리카 음식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국물을 떠서 면을 소량 올리고 반숙된 계란을 반으로 쪼개 한 입에 넣는다. 크아! 감탄만 나온다.


이것이 행복이다. 행복을 넘어 축복이다. 지금만큼은 축복을 라면이라는 단어로 대체해야겠다. 당신의 삶을 ‘라면’합니다.



사파리 투어 3일 간 먹었던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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