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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신대륙.


독락한 세월은 허송이었던가

와인바 앞 발걸음이 가련하다


문을 열고 디딘 한 걸음은

콜럼버스의 내딛음이여


미소로 화답하는 주인장

따스히 환영하는 조명


와인과 치즈의 성가가 울리던 그날

여행자는 신대륙을 발견했다


와인 한 잔만 시켜도 엄청난 치즈 플레이팅이 제공되는 이태리 제노바의 와인바


먼 옛날, 혼자 밥을 먹는, 소위 혼밥이 뉴스거리가 될 만큼 흔하지 않은 시절에도 이미 능숙하게 혼밥을 즐기고는 했다. 취업준비를 거치며 단련된 혼밥 스킬은 웬만한 식당은 물론이고 뷔페와 고깃집 정도도 어렵지 않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가끔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면 혼자 마시는 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는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식사가 혼밥이다. 유명한 맛집에서도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또한 대화나 격식을 따로 차리지 않아도 되므로 음식의 맛에 100% 집중할 수 있다. 간혹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을 먹을 때면 백종원 아저씨에 빙의해 “재밌는 맛인데?” 라며 위로했다.


제노바에 도착하고 꼭 해야 할 리스트 중 하나는 ‘주점에서 와인 마시기’이다. 어릴 때 했던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대낮에 도착한 까닭에 날이 어둑해지길 기다리며 유명하다는 수제버거집에서 요기를 했다. 도시에 가로등이 켜지자 미리 찾아 놓은 작은 와인바로 향했다. 골목길에 위치한 바였기에 한번 길을 헤매고 왔던 길을 다시 찾아와 간판을 살펴본다. 그러고는 마치 잘못 찾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골목길을 돌아본다. 세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굳게 먹고 문을 연다.


긴장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반겨주는 주인의 미소가 참으로 인자하다. 커다란 코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다부진 체격과 상반되는 선한 눈이 게임 속 주점 아저씨와도 닮아있다. 환상적인 첫인상에 마음이 안정됐다. 따뜻한 조명에 수기로 쓴 듯한 메뉴판을 보니 더욱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이태리어를 못하는 손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주인의 대화의 언어는 몸짓이 된다. 맥주 한 잔을 주문한 뒤 주점을 더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한 크기에 나무로 만든 원형 테이블, 지하에는 눕혀진 와인들이 아주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고민했던 시간이 아깝지 않게 볼수록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맥주로 목을 축이고 와인 한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와인과 함께 나오는 치즈 플레이팅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예쁘고 맛있어 보였다. 주인아저씨는 각각의 치즈를 이태리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와인 한 잔을 시켰을 뿐인데 나온 치즈 플레이팅을 보니 절대 한 잔으로 끝날 수 없다고 직감했다. 와인 한 모금을 마신 후 조그맣게 치즈를 잘라 입에 넣는다. 한참이나 남은 치즈들이 말을 건다. ‘이렇게 맛있는데 한 잔만 마시고 갈 거야?’. 대답은 주인장에게 한다. 손짓과 몸짓으로 주문한 와인 한 병이 테이블에 놓이자 조금은 주접스럽게 와인을 잔에 가득 채웠다. 이전에 마셨던 와인에서는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와인의 진가를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다시 한 모금.

와인과 치즈가 어우러지며 성당에서는 종소리가 들린다. 깊어지는 것이 종소리인지 와인맛인지 모를 만큼 스며든다


겨울밤, 콜럼버스의 고향인 제노바에서 여행자는 와인의 신대륙을 발견했다.


둘이 마신 것 같지만 혼자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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