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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광활한 사막에 발끝도 닿지 못했건만

햇볕은 가슴까지 태우고

엉덩이는 뜨겁게 끓는다


낙타를 이끄는 어린 소년의 뒷모습이

다만 사막처럼 거대할 뿐이다


그의 모험은 말이다

거친 사막이 아닌

놀이터의 모래성이었다


그의 투쟁은

모래 폭풍이 아닌

조금 불편한 낙타의 안장이었다


겉으로는 태양처럼 뜨거웠지만

속은

서늘하다 못해 싸늘해진

깊은 밤의 모래알이었다


낙타를 이끄는 소년


사하라 사막에 오면 낙타를 타고 사막 여행을 해야 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들숨을 크게 들이켜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하고 바다에 가면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듯 사막과 낙타는 필연적으로 이어진 과정이다. 사막 앞에서 처음 마주한 낙타는 생각보다 거대하다. 낙타투어가 동물혹사이지는 않을까 라는 걱정도 잠시 스쳤으나 통통한 외형과 깨끗하고 흰 낙타를 보니 안심이 된다. 안장에 오르면 무릎을 꿇었던 낙타를 힘차게 일어나는데 이 역시 생각보다 높고 거칠다. 꽤나 혹독한 승차감에 당황했지만 낙타와 함께 사막에 진입하는 몇 걸음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역경이 가득할 긴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황토색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는 감동을 즐기며 사진을 찍었다.


낙타를 타고 가다 보니 수직으로 내리꽂는 태양빛에 몸이 뜨거워진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강력한 태양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낙타에서 잠시 내려 사진을 찍는데 오전 내내 햇빛과 몸을 부빈 모래는 끓는 주전자가 되어 발바닥에 불을 지른다. 인생사진이라는 것을 찍어보자는 열정이 모래보다 뜨거워 불타오를 것 같은 발바닥의 고통을 어떻게든 견뎌본다. 사진을 찍고 낙타 위에서 다시 마주한 사하라 사막의 벅찬 감동은 생각보다 빨리 식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 누적되는 태양열과 불편한 안장으로 인해 엉덩이가 아파 온 까닭이었다. 몇 시간이나 낙타에 앉아 반복되는 풍경과 끝없는 사막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저런 잡념과 회상에 빠져든다. 대부분의 잡념이 부정적인 까닭은 엉덩이가 아프기 때문인지 햇빛이 뜨겁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부당한 것을 모르는 채 지나쳤던 기억, 당당하지 못했던 모습 등이 스쳐가는 중 낙타부대를 이끄는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였으면 중학생 정도였을 법한 작은 아이였다. 낙타 한 부대를 태연하게 이끄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 순간을 모험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이것은 모험이 아니다. 안전하고 보호받는 길을 지나가는 ‘체험’ 일뿐이었다.


자신만의 꿈을 찾을 것이라고, 안정된 삶은 싫다며, 앞을 알 수 없는 모험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며 떠들어댔지만 대부분 낙하산이 달려 있는 안전한 모험이었다. 일부 친구들은 고연봉의 외국계 기업을 포기한 것에 대단함을 표하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에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다. 그들은 나를 뜨거운 사람이라 말했다.


실제로는 뜨겁지 않았다. 미지근한 하루를 보내고 식은 마음으로 의미 없는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기도 했다. 날이 저물고 밤이 되자 차갑게 식어버린 사막의 모래알처럼 뜨거운 열정은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어버리고는 했다. 술 한잔 들이켤 때면 내일부터는 뜨거운 삶을 살자고, 멋진 하루를 보내보자 다짐하지만 다음 날에도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는 했다.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나의 도전은 사막의 낙타투어처럼 크게 대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뜨거워 보였던 열정도 해가 지면 싸늘하게 식는 모래알 같았다는 것을.


해가 지고 서늘해진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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