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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매일 떴지.


오랜만이오

매일 오고 가셨거늘

무엇이 망망하여 몇 해 만에 찾아왔소


함께하는 날, 늘 지복이니

오늘 하루도 눈이 부실 님이여

종종 인사하러 오겠소


올드바간의 흔한 전경


주어진 것에 감사하려는 마음은 늘 노력해도 쉽지 않다. 불같이 뜨거운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이 있다는 것, 얼음장 같은 겨울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결핍됐을 때 상상 이상으로 감사한 일이 될 것이다. 고된 하루가 끝나고 좋아하는 음식에 하얀 거품이 가득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켤 수 있다는 것이 현대사회에서는 큰 이벤트는 아니지만 아주 행복한 일이다. 이토록 문명의 혜택을 넘어 공기와 물 같은 자연이 부여한 당연한 조건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불편하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늘 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마지막으로 본 해돋이가 언제였을까. 어릴 적 해돋이의 추억은 어렴풋이 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보러 간 적이 없었다. 군대에서 새벽 근무로 인해 우연히 본 적은 있었으나 정월에 해돋이를 보기 위한 여행을 한다거나 일찍 일어나는 노력 등은 따로 하지 않았다. 해는 매일 뜨니까. 매일 뜨는 해는 내일도 모레도 볼 수 있으니 오늘 꼭 볼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에어컨과 시원한 맥주에 감사한 적은 있었지만 해가 뜨는 것에 감사한 적은 없었다. 해돋이를 보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미얀마의 올드 바간은 도시 전체가 사원과 숲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빌딩이나 현대식 건물은 전무하다. 오로지 숲과 사원만 끝없이 펼쳐진다. 서로가 더 큰 키를 자랑하며 서로의 햇빛을 막는 여느 도시와는 다르게 올드바간에서는 모든 곳에서 해를 볼 수 있는 평등함이 있다. 너그러운 도시에서 해돋이를 보고자 새벽부터 전기바이크를 타고 사원으로 향했다.


동남아 국가에서는 대부분 오토바이를 많이 탄다. 여행자들도 오토바이를 자주 대여하는데 편리하지만 매연이 많이 발생한다. 올드바간은 특별하게도 전기바이크만 대여할 수 있다. 조용하고 매연이 없어 일반 오토바이보다 굉장히 친환경적으로 느껴졌다. 너그럽고 자연친화적인 올드바간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 무렵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이 되었다. 잠시 마음이 식는다. 하지만 금세 빠지는 사랑보다는 천천히 스며드는 애정을 더 선호하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여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올드 바간의 마을, 흙길과 울타리가 정겹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대여업체에서 전화를 받았다. 새 오토바이를 빠르게 보내줘서 해가 뜨기 전에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둘러 오른 사탑의 꼭대기에서는 올드 바간의 모든 사원과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같은 풍경에 지루해질까 봐 올라오는 해가 색을 바꾸며 사원을 비춰준다. 숲을 본다. 하늘은 본다. 해를 본다. 저쪽 사원에서도 우리를 보고 해를 볼 것이다. 모두가 평등한 풍경을 누린다. 늘 주어진 것에 등한시 여겼던 일출은 사진으로 담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 시원한 아침 공기와 따스한 햇살이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감각을 느끼며 마음이 트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오랜 시간 잊고 살았다.


매일 뜨고 지는 해. 무엇이 바쁘다고 몇 년이나 찾아오지 못했는지. 가끔씩 찾아오겠습니다.


올드 바간에 머무는 사흘간 매일 본 일출과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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