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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사막 가는 길

창문에 동석하는 파리 한 마리


용기 있는 그대에게 찬사를 보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겁도 없이 앞 모를 여정을 떠나는구나


버스의 종착지

그대는 알았을까

알았다면 버스에 탔을까




지난날 회사생활은 나름 행복했다. 분명 여느 직장인처럼 출근은 피곤하고 월요일이 싫었다. 회사가 본가와 멀어 일요일 밤마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돌아가는 기분은 휴가에 복귀하는 이등병처럼 울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고 업무능력이 향상될수록 직무는 적성에 맞아갔다. 일요일 밤의 고속도로도 더 이상 울적하지 않았다. 점점 비중 있는 일이 맡기 시작하며 일하는 가치를 존중받는 느낌이 좋았다. 무엇보다 돈을 벎으로써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열 가지 중 한 단계 정도는 끝낸 것 같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해, 내가 '나'가 되기 위해 회사생활만으로는 부족했다. 부족하다고 예단했다. 알 수 없던 결핍은 정해진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자신에서 오는 것이었다. 왜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어릴 적 꿈이었던 세계여행까지 이끌어 내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세계여행을 택한 대신에 회사와 사회가 주는 것을 놓아야 했다. 돈, 집과 차 나아가 가족을 꾸릴 미래.


평범한 인생을 던져놓고 여행을 떠나 온 지금은 모로코의 어느 시골에 정차해 있다.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는 버스는 벌써 5시간은 족히 달렸지만 지도를 보니 반도 오지 못했다. 지루함에 기지개를 켜고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데 버스에 파리 한 마리가 들어온다. 아마 버스의 퀴퀴한 냄새가 마음에 들어 끌려 왔을 것이다. 아니면 파리도 정해진 미래를 버리고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파리는 유리창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그만의 향긋한 향기를 즐긴다. 곧 문은 닫힐 것이며 버스는 사막의 도시인 메르주가까지 5시간은 더 향할 것이다. 창문에 앉은 파리는 아직까지 나름 편안해 보인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파리는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버린다. 중간에 멈출 수 없으며 되돌릴 수도 없다. 파리로서는 도착지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 한 번의 선택으로 평범한 삶에서 빗겨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버렸다. 미래는 알 수 없고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버스의 종착지가 사막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파리는 버스에 타지 않았을까. 이렇게 멀리 떠나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버스에서 내렸을까.

나는 지금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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