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경(敬)’

마음을 지켜보는 훈련 (융과 캠벨의 시선으로)

by 이재현

조용히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왜 이토록 어려울까? 바쁜 일상, 수많은 소음,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우리는 늘 ‘밖’을 보느라 ‘안’을 잊고 살아간다. 퇴계 이황이 말한 ‘경(敬)’은 바로 그 잊힌 내면을 다시 마주하는 훈련이다. 그것은 단순한 집중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대한 깊고도 조용한 존중이다.


칼 융은 ‘경’과 유사한 태도를 ‘자기 관찰(self-observation)’이라 불렀다. 그는 인간의 의식은 자주 무의식에 휘둘린다고 보았고,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훈련이야말로 무의식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길이라 했다. 캠벨 역시 영웅의 여정 초입에서 “자기 내면의 부름에 응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은 바로 그 응답을 위한 깨어 있는 상태다.


‘경’은 마음을 억누르거나 강제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태도다. 지금 나는 어떤 감정에 끌리고 있는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가? 어떤 습관이 나를 반복된 패턴 속에 머물게 하는가? 이러한 관찰이 쌓일 때, 우리는 마음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게 된다.


융은 자아와 자기(Self)의 연결을 위해서는 일상의 작은 의식(ritual)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경’은 바로 그런 실천이다. 아침에 숨을 고르고 하루의 마음을 준비하는 시간, 일과 중에 멈추어 나의 감정을 점검하는 순간,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조용히 성찰하는 루틴. 이 모든 것이 ‘경’이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내면의 중심을 만드는 훈련.


오늘 하루, 3분이라도 좋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지금 내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바라보자. 그 순간 ‘경’은 시작된다. 진짜 영웅은 자기 마음의 흐름을 알고, 그 흐름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퇴계가 강조한 ‘경’은 결국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서 깨어 있는 리더십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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