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할, 공동체와 천명

나를 넘는 더 큰 목적과 연결되기

by 이재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사회 속에 연결된 존재이기도 하다. 나의 생각과 말, 행동은 나만의 문제를 넘어서 타인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역사의 흐름에 한 줄을 그어놓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개인을 넘어서, 관계와 맥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퇴계 이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역할을 사유했다.


퇴계는 『성학십도』에서 인간은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세상 속에서 실현해야 할 존재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에게는 ‘천명(天命)’이 주어져 있으며, 그것은 단순한 숙명이 아니라 자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도덕적 사명이자 시대적 소명이었다. 인간은 타고난 본성과 양심을 바탕으로,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바른 길을 이끄는 주체로서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퇴계에게 ‘인간다움’은 공동체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는 예(禮)를 중시했고, 관계 안에서의 도리를 강조했다. 효와 우애, 의리와 신뢰는 단지 가정 안의 윤리를 넘어, 사회 전체의 건강성과 지속가능성을 지탱하는 핵심 가치였다. 인간의 역할은 그래서 자기 수양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곧 공동체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도덕적 완성은 사회 전체의 조화와 직결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사유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극심한 개인주의와 경쟁 중심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성공은 점점 더 개인적인 것이 되었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은 흐려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언제나 자기 이익을 넘어서 더 큰 목적과 연결되는 순간에 빛난다. 퇴계가 말한 ‘천명을 따르는 삶’은 바로 그런 리더십의 본질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에 서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더욱 고립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와 협업을 요구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퇴계가 말한 인간의 본질적 역할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그것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시대적 맥락 속에서 다시 묻는 일이다.


퇴계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대는 지금, 세상에 어떤 빛을 더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며, 더 큰 목적과 연결된 삶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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