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멋있는 사람과 좋은 사람

진보와 보수

by 이재현

나는 최근, 흥미로운 연구를 하나 접했다. 칠레 아돌프 이바네스대와 미국 애리조나대 마케팅학과 교수팀이 전 세계 13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이들은 “멋짐(coolness)”과 “좋음(goodness)”이 문화마다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살펴보았고, 놀랍게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그 기준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따르면 멋있는 사람은 외향적이고(Extraverted), 쾌락을 추구하고(Hedonistic), 카리스마 있고(Powerful), 모험적이고(Adventurous), 개방적이고(Open), 자율적(Autonomous)인 존재였다. 반면, 좋은 사람은 전통적 규범을 잘 따르고(Traditional), 잘 어울리고(Conforming), 온화하고(Warm), 동조를 잘하고(Agreeable),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Universalistic), 안전 지향적이고(Security), 신중(Conscientious)한 특성을 지닌다.


나는 이 두 분류를 읽고 곧바로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내 나름의 해석이지만, 진보는 ‘멋있는 사람’에, 보수는 ‘좋은 사람’에 닮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진보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을 즐기며 자율성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보수는 공동체의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며 안정과 신중함을 가치로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를 진보적인 사람으로 분류한다. 정치적 견해 때문이기도 하고, 다소 급진적이라 여겨지는 생각들을 거리낌 없이 말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보수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보편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삶에서 안정과 신중함을 우선한다. 동시에, 모험을 추구했고, 개방적이며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려 했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왜 우리는 자신을 진보 아니면 보수 중 하나로만 규정하려 드는가? 우리는 양자택일의 틀 속에 자꾸만 자신을 끼워 넣는다. 마치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정체성이 불명확해지는 듯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진보와 보수는 시대를 끌고 가는 두 바퀴다. 하나가 앞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면, 다른 하나는 뒤를 지키며 중심을 잡는다. 균형은 이 둘 사이의 긴장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긴장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을 특정한 진영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앞으로 한 걸음 내딛고, 또 어떤 때에는 멈추어 돌아볼 줄 아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 동시에 멋있는 사람도 되고 싶다. 그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내면의 여러 자아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조화와 균형, 깊은 성찰과 담대한 실천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는 진보이기도 하고, 보수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조금은 진보이고, 또 조금은 보수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진짜 나다운 길을 찾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중요한 일과 긴급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