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사건은 남는다.

숙흥야매잠과 사건 중심의 루틴 설계

by 이재현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현실은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는’ 법은 익히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시계는 분 단위로 우리의 일상을 쪼개고, 달력은 빼곡한 일정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된 삶 속에서도, 정작 ‘소중한 것’은 자주 놓쳐버린다. 나는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마음은 점점 더 지치고 허전해질까?


여기서 우리는 시간 관리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된다. 시간 관리는 단지 분과 시를 나누고 일정을 조율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먼저 결정하고, 그 방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다. 다시 말해, 시간관리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사건을 관리하는 일이다.


삶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깨어 있는 순간들의 집합이다. 의미 있는 사건—감동적인 대화, 깊은 성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과의 연결, 나를 다시 세우는 작은 실천—들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게 일어나는가에 따라 삶의 품격이 달라진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갈 때 단지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보다 먼저 “오늘 어떤 사건을 만들고 싶은가?”라고 물어야 한다.


퇴계 이황의 삶은 이러한 사건 중심의 시간관리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모범이다. 그는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의 자세로 하루를 구성했다. 새벽에는 마음을 정돈하고, 낮에는 학문과 실천을 통해 뜻을 실현하며, 밤에는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의 하루는 단지 반복되는 루틴이 아니라, 자기 수양과 도덕적 성장을 위한 사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내게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족일 수도 있고, 건강, 배움, 나다움, 혹은 한 사람과의 진심 어린 대화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시간표 어디에 놓여 있는가이다. 일주일 동안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소중한 것을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일주일, 한 달을 ‘사건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매일 아침, 오늘 반드시 경험하고 싶은 소중한 사건 하나를 떠올리고, 그것을 위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자. 매주 혹은 매달, 나의 가치와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을 루틴으로 만들자. 이렇게 사건을 중심에 둔 시간 구조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 된다.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 있을 때, 그 시간은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쌓여 인생이 된다. ‘숙흥야매잠과 시간관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시간을 다스린다는 것은 내 삶의 본질을 다스리는 일이며, 하루하루를 나답게 살아가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이제 당신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오늘 하루, 어떤 사건을 만들 것인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해야 할 일보다, 살고 싶은 삶을 먼저 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