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성찰–주재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불안, 분노, 그리고 두려움이다. 이 세 감정은 삶의 위기에서 특히 크게 솟구쳐 오른다. 불안은 미래를 향한 두려움으로, 분노는 현재의 좌절과 억울함으로, 두려움은 존재 그 자체를 위협하는 본능으로 나타난다. 서양적 접근이 이 감정들을 억제하거나 외부로 표출하는 방식에 무게를 두었다면, 동양적 전통은 조금 다른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 흐름을 성찰 속에서 다스리는 것”이다.
심학은 감정을 제거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일부로 본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부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각하고 들여다보는 태도다. 불안이 몰려올 때, “나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구나” 하고 인정하는 순간 감정은 나를 집어삼키는 힘을 잃는다. 이는 현대의 마음챙김(mindfulness)과도 맞닿아 있다.
분노를 다루는 방식도 비슷하다. 동양적 전통에서는 분노를 즉각적인 폭발로 풀지 않고, ‘한 걸음 멈추어 성찰하는 것’을 중시했다. 퇴계가 강조한 경(敬)은 바로 이 순간 필요한 태도다. 마음을 바르게 주재하는 힘을 기르면, 분노가 나를 지배하기 전에 내가 분노를 바라볼 수 있다.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내 행동을 파괴하지 않도록 막는 힘이다.
두려움 역시 마찬가지다. 동양 사상에서는 두려움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자기 경계와 겸손을 일깨우는 스승으로 보았다. 두려움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성찰하며, 나약함을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심학의 계제(戒懼), 즉 늘 자신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는 두려움을 통해 오히려 도덕적 성숙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불안·분노·두려움을 다루는 동양적 방식은 감정을 억압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자각–성찰–주재라는 과정을 거친다. 먼저 감정을 인정하고, 그 뿌리를 살피며, 경을 통해 중심을 잡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는 적이 아니라, 나를 성장으로 이끄는 동반자가 된다.
리더십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결정적이다. 감정의 폭풍에 휩쓸리는 리더는 공동체를 불안하게 하지만, 감정을 자각하고 성찰할 줄 아는 리더는 위기 속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한다. 그 차분함은 곧 신뢰로 이어지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심학은 우리에게 말한다. “감정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길들이는 것이다.” 불안과 분노, 두려움 속에서도 마음을 바르게 주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더 큰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