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도의 통찰과 AI 시대의 경고
퇴계가 성학십도 두 번째 그림으로 '서명도(西銘圖)'를 선택한 이유는, 인간이 가진 능력과 행위가 ‘하늘이 부여한 목적’과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주돈이는 “하늘은 만물을 낳되, 각자에게 그 쓰임을 주었다”라고 했다. 인간의 재능과 기술, 지식과 문명도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그것이 어떤 목적의식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밝히기도, 어둡게도 만든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이 스스로 진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판단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쓰고, 심지어 창의적 결과물도 만들어낸다. 그러나 질문해야 한다. “그 기술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
퇴계가 말한 ‘하늘의 명(天命)’은 인간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도(道)'에 맞게 써야 한다는 원리다. 기술은 도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하늘이 준 본성(性)이 방향이라면, 기술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다. 목적의식이 사라진 기술은 배의 키를 잃은 항해와 같다.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가는 곳이 어둡다면 결국 침몰에 이른다.
스티븐 코비는 이를 ‘두 번째 습관’에서 경고한다. “효과성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하는 것(Effectiveness)이다.” 즉, 기술의 발전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인간의 본래 목적—사람을 위한 것, 생명을 위한 것—에 봉사하는가이다.
AI 시대의 리더에게 이 통찰은 절실하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수단일 뿐, 방향은 인간이 세워야 한다. AI는 인간이 던지는 질문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 “이 기술로 누구를 돕고 있는가?”, “이 발전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가?” 이 물음을 잃는 순간,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퇴계는 이를 ‘경(敬)’의 마음으로 다스리라 했다. 경은 단순한 집중이 아니라, 도구를 다루는 인간의 정신적 깃발이다. 하늘이 준 본성을 잊지 않고, 기술을 도의 길에 맞게 쓰려는 자각. 그것이 곧 기술 문명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리더의 자세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은 기술의 정밀함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양심적 방향 감각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기능이 아니라 의미가 중요하다. ‘왜 이 기술을 사용하는가’를 묻는 사람이 바로, AI 시대의 진정한 리더다.
기술은 인간의 손을 빌려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그 손을 어디로 뻗을지는 인간의 마음이 결정한다. 하늘의 뜻이 없는 기술은 방향을 잃고, 목적의식이 없는 진보는 결국 자기파괴로 귀결된다.
서명도가 오늘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술보다 먼저, 그 기술을 사용하는 마음을 바로 세워라.
그것이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도리이며, 리더가 잃지 말아야 할 근본의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