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기술이 아닌 수양이다

by 이재현

퇴계 이황은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에서 마음(心)이 성정(性情)을 통섭한다고 하였다. 이는 단순히 감정을 제어하라는 말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자기 마음의 근원을 맑히라는 가르침이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흉내 내는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거울을 닦는 수양이다. 마음이 혼탁하면 타인의 고통이 왜곡되어 비치고, 마음이 고요하면 타인의 슬픔 속에서도 진심을 본다.


오늘날 공감은 흔히 ‘소통 기술’이나 ‘대화 스킬’로 다뤄진다. 조직 리더십 교육에서도 ‘적극적 경청’이나 ‘비언어적 공감 표현’ 같은 방법이 강조된다. 그러나 퇴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공감의 껍데기일 뿐이다. 진정한 공감은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고개를 끄덕여도 상대의 진심을 읽을 수 없다. 퇴계는 “경(敬)을 지키면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르면 정(情)이 순해진다”고 했다. 즉, 공감의 본질은 ‘경(敬)’의 자세, 곧 상대를 향한 경건한 마음가짐이다.


스티븐 코비의 제5습관 “먼저 이해하고, 그다음에 이해시켜라”도 같은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코비는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공감적 경청(Empathic Listening)’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경청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다. 마음으로 듣는 일, 판단을 멈추고 상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는 단련된 마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AI 시대의 리더십에서도 이 점은 더욱 중요해진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한 감정 분석을 한다 해도, 그것은 데이터의 공감이지 마음의 공감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기술보다 정신의 깊이로 사람을 이해한다. 마음이 닦인 사람은 말보다 침묵으로, 논리보다 온기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공감은 배워서 익히는 ‘스킬’이 아니라, 닦아서 드러나는 마음의 품성이다. 퇴계의 말처럼, 마음이 정을 통제하고, 경이 마음을 바로잡을 때, 비로소 타인의 고통이 내 마음 안에서도 울릴 수 있다. 그것이 ‘심학(心學)’의 길이며, AI 시대에 잃지 말아야 할 인간의 리더십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백록동규의 정신, 협력의 도(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