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동규의 정신, 협력의 도(道)

성학십도의 공동체 리더십

by 이재현

학문의 완성은 사사로운 깨달음이 아니라, 함께 사는 도(道)로 귀결된다. 백록동서원은 남송 주희가 세운 학문 공동체로, 그가 제정한 백록동규는 단순한 규율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윤리를 집대성한 협력의 헌장이다. “사람을 대할 때는 공경으로, 친구를 사귈 때는 믿음으로, 배우는 일에는 부지런함으로”라는 조항들은 개인의 수양을 넘어 공동체적 리더십의 토대를 제시한다.


퇴계는 이를 “서원의 법도가 곧 천하의 도덕을 세운다”고 해석했다. 학문이란 혼자서 닦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거울이 되어 함께 완성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협력의 도(道)는 단순한 협동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데서 비롯된다. 각자의 생각이 다를 때, 그것을 억누르거나 경쟁으로 몰아넣는 대신, 서로의 차이를 통해 더 큰 통찰로 나아가는 것 — 이것이 백록동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스티븐 코비가 말한 제6습관, ‘시너지를 내라(Synergize)’와 깊이 맞닿아 있다. 코비는 “1+1=2가 아니라 3,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단순히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의 조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주희가 제자들과 더불어 진리를 탐구하며 ‘의논(議論)’을 중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정한 협력은 일치가 아니라 존중 속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


오늘날 AI 시대의 리더십도 이 협력의 도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인간과 AI의 관계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상보적 협업의 관계다. 인간의 공감력과 윤리적 판단, AI의 분석력과 속도가 만나야 비로소 ‘지혜’가 탄생한다. 마치 퇴계가 말한 “군자의 도는 홀로 있지 않다(君子之道, 非孤立也)”처럼, 지성 또한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리더는 구성원 간의 관계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공동의 도를 일깨우는 조율자여야 한다. 각자의 강점이 빛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서로의 생각이 충돌할 때 그 안에서 배움의 기회를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백록동규의 ‘협력의 도’이며,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리더의 미덕이다.


백록동규의 정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의 깨달음은 나로 인해 완성되고, 나의 성장은 너로 인해 확장된다.”

이 말은 곧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리더십의 언어이기도 하다. 협력은 생존의 전략이 아니라, 인간됨의 본질이다. 백록동의 도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함께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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