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와 공감의 리더십
퇴계 이황의 철학에서 ‘경(敬)’은 모든 수양의 근본이다. 그러나 그 경(敬)은 단지 자세를 곧게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내면적 훈련에 그치지 않는다. 퇴계에게 ‘경’은 타인의 말과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 곧 경청의 철학이었다. 그는 제자들과의 서신 속에서 “말을 듣는 데에는 반드시 마음을 비워야 하며, 나의 생각으로 가늠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즉, 경청은 지식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다. 마음이 비워져야만, 상대의 진심이 내 안에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이 ‘경청의 철학’은 스티븐 코비가 말한 제5습관 “먼저 이해하고, 그다음에 이해시켜라(Seek First to Understand, Then to Be Understood)”와 깊이 맞닿아 있다. 코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는 척하면서 사실은 응답을 준비하거나 판단을 내리는 듣기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한 ‘공감적 경청(Empathic Listening)’이란 상대의 말 뒤에 숨어 있는 감정과 의미를 이해하려는 마음의 훈련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퇴계가 말한 ‘경’의 마음, 즉 비움의 태도다.
퇴계의 경청은 단순히 말을 듣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듣는 일이었다. 그는 사람의 말 뒤에 있는 마음, 마음 뒤에 있는 도(道)를 들으려 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는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살피라 가르쳤다. 코비 역시 같은 통찰을 전한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두 사상가 모두 이해(understanding)를 인간관계의 출발점이자 리더십의 핵심으로 보았다.
AI 시대의 리더십에서도 이러한 경청은 더욱 절실하다. 인공지능은 대화의 문맥을 분석하지만, 침묵의 의미는 듣지 못한다. 진정한 리더는 말의 표면을 넘어 마음의 진동을 듣는 사람이다. 퇴계의 ‘경청의 철학’이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관계의 도(道)이며, 코비의 제5습관이 제시하는 것은 신뢰의 기반으로서의 이해다.
퇴계의 ‘경’과 코비의 ‘공감적 경청’은 서로 다른 시대의 언어로 같은 진리를 말한다. “진정으로 들을 때, 비로소 관계가 열린다.” 마음을 비우고 귀를 연 리더만이 사람을 살리고, 조직을 하나로 묶는 공감의 중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