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시집보내며

(사위에게, 사돈에게 쓴 편지)

by 이재현

앤소니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앤소니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엔 며칠 전 내 손으로부터 현경이를 데려갔다. 그런 앤소니를 바라보면서 몇 가지 느낀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하려 한다.


앤소니는 큰 시험에 들어섰다.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모습이 아름다워 반했다고? 너는 그게 악마의 유혹이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현경이와 지내면서 조금은 눈치를 챘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혼식 피로연에서 승민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민이는 현경이를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거기에 더불어서 승민이가 말하길 우리 집에서 아빠와 맞짱 뜰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다 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현경 이인 것이다.


천사는 악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결혼은 운명적이다. 현경이가 앤소니에게 나타난 것도, 앤소니가 현경이에게 반한 것도 운명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운명을 거부하고 도망가느냐 아님 그것에 순응하느냐. 앤소니는 운명에의 순응을 선택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헤쳐 나가는 일이다. 이제는 내 사위가 되었기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무기를 알려주려 한다. 한 사람이 공격할 때 함께 맞서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뿐이다. 상대가 공격을 할 때는 한발 물러서서 그냥 들어주는 것이다. 우리의 승리는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주기 바란다. 이런 시련을 이겨낸 사람이 진정한 승자로 악마의 진정한 모습이 천사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현경이는 현명한 여성이다. 우리 가족에게 현경이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빠인 나에게는 기쁨이었으며 엄마에게는 친구 같은 딸이었고 동생에게는 선생님 같은 멘토였다, 나는 현경이의 아빠 역할을 해 오면서 어른이 되었고 현경이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고 나아가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현경이의 아빠인 것이 나에겐 행운이며 항상 고마운 마음이었다. 이렇게 현경인 우리 가족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현경이가 앤소니를 자신의 평생 동반자로 맞이하였다. 나는 믿는다. 앤소니와 현경인 아름다운 부부가 될 것이라는 것을. 현경이의 남편이 된 앤소니도 나와 같은 생각, 같은 시야, 같은 마음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와 현경이가 부부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네가 우리의 가족이 되어 기쁘다. 우리가 비록 하나의 언어로 깊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못 나눈다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또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겠니.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현경이 모르게)가 있거들랑 그냥 영어로 보내면 된다. 나에겐 현경이 말고 또 다른 한 명의 믿음직스러운 영어 통역관이 있으니까. 나도 현경이 모르게 할 말이 있으면 영어로 편지 보낼 예정이다. 신부의 환한 모습에서 신랑에게 많이 사랑받고 있구나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 안고 서울로 돌아와 즐거운 마음으로 사위에게 첫 편지를 보낸다. (2018년 4월 3일. 현경이 아빠가 )


앤소니 아버님께

돌아오는 길은 걱정했던 것보다 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딸을 보내고 오니 많이 서운했겠구나라는 친구들의 인사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베풀어주신 세심한 배려로 인한 편안함 때문에 긴장을 놓아 혹 예의를 벗어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현경이에게 따뜻하고 넉넉한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이 드니 제가 사돈 복이 참 많습니다. 미래의 사돈과 함께 골프도 하고 소주도 한잔 하는 상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진 못해 좀 아쉬움도 있지만 뒤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계시는 한결같은 분이라는 믿음이 저를 편안하게 합니다. 저에겐 과분한 사돈이십니다.


우리가 앞으로 열 번은 만나겠지요? 아니 잘하면 스무 번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만남의 횟수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매일 보아도 기억나지 않는 만남이 있는 반면에 한번 만났는데도 평생을 기억하는 그런 만남도 있을 겁니다. 많이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만남의 순간들은 더욱더 소중하고 알찬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좋은 장인이 될 수 있을지, 좋은 사돈이 될 수 있을지.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좋은 남편이 돼라. 좋은 남편이 되려면 좋은 아버지가 돼라”라는 말은 가슴에 안고 살아왔듯이 좋은 사돈이 되는 길은 좋은 장인이 되는 것이고, 좋은 장인이 되는 길을 좋은 사돈이 되는 길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겠습니다.


앤소니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현경이 모습에서 봅니다. 딸의 아버지로서 이보다 더 큰 기쁨과 고마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큰 행운입니다. 제가 사위 복도 많은가 봅니다.


이번 여행은 조금은 남아 있었던 자그마한 걱정마저도 다 떨어 버림은 물론 많은 복을 선물로 받아왔습니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곧 먼동이 트려나 봅니다. 편지 쓰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사돈 가족에게 언제나 평화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2018, 3, 31 현경이 아버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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