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딸은 살림 밑천

by 이재현

”여보, 우리 딸 너무 멋지지 않아! “ 딸이 만든 책을 읽으며 아내가 수시로 감탄합니다. 아내는 딸이 쓴 글이 마냥 신기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딸은 올해 초 아빠인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주었습니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기 전에 미리 읽어보고 이런저런 의견도 줍니다. 그러던 딸이 이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조그만 책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내는 딸에게 무한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도 책을 내겠노라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글을 한 편 쓰고는 나에게 비평을 부탁했습니다. 나는 정성을 다하여 읽고 몇 가지 의견을 주었습니다. 아내는 딸에게도 비평을 부탁했나 봅니다. ”당신보다 경아가 훨 났다! “ 아내의 뒷말입니다. 같은 말인데도 내 말보다 딸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이젠 딸이 우리 가족의 최종 결재권자입니다.

딸은 자라면서 나와 많이 싸웠습니다. 내가 딸과 싸웠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어이없다 했습니다. 딸은 싸우는 대상이 아니라 혼나는 대상이라고. 그런데 나는 정말 딸과는 싸웠습니다. 그리고 항상 지는 사람은 나였습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고,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부러워했습니다.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아버지를 이기는 누나를. 나는 딸과 함께하면서 지는 법을 배웠고, 딸의 아빠가 되면서 철이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딸이 나를 ”아빠“하고 불렀고, 나는 ”왜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왜 “라는 나의 대답 소리가 내 귀에 매우 퉁명스럽게 들려왔습니다. 당황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딸이 아빠를 부르는데 나는 왜 이리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걸까? 그날 이후로 나는 상냥스럽게 대답하려고 노력을 하였고 연습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부드러운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제 인생의 mentor가 있어요. 누군지 아시겠어요?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때 제가 마지막으로 꼭 찾는 사람. 최고의 해답을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또 실제로 항상 최고의 해답을 주는 사람. 제가 120% 신뢰하는 사람. 저에게 그런 인생의 mentor가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1학년이었던 딸이 나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이제는 딸이 나의 멘토입니다. 내가 쓴 글에 의견을 주고, 나의 미래 계획에 조언을 줍니다. 아내에게 딸은 최고의 친구입니다. 딸이 지구 반대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한 번은 전화합니다. 딸은 항상 친절하고 성실하게 응대해 줍니다. 가끔 딸의 시어머니께서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자주 전화드리라 하시곤 하는데, 그렇게 민망하기 짝이 없답니다.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누나라고 결혼식 축사에서 말했습니다. 옛말에 첫 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딸이 엄마가 됩니다. 슬기로운 엄마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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