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나를 아빠라 하는데 아들은 나를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들이 10살쯤 되었을 때부터 ‘아버지’로 부르라 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부르는 엄마, 아빠라는 호칭이 귀에 거슬렸습니다. 아들은 사나이여야 했고, 사나이는 아버지라 불러야 하지 아빠라 부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그에게서 엄마 아빠를 빼앗아 그 자리에 어머니, 아버지를 놓았습니다.
최근에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갔습니다. 서른이 넘은 아들이 친구에게 아빠라 부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자간의 친근함이 부러웠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지금부터 나를 아빠라고 불러 줄래? “라는 말에 ”아버지 어디 편찮으세요! “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각고의 노력으로 결혼 4년 만에 첫 딸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15개월 만에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을 얻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얻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정성이 가상하여 신께서 딸을 주시며 아들 하나를 보너스로 보내셨다고. 언젠가 아들이 말했습니다. 자기의 존재는 원 플러스 원이라고.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성당에서 ‘복사’를 하였습니다. 복사는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을 옆에서 보좌하는 일입니다. 아들은 주말 첫 미사의 복사였고, 새벽 6시까지 성당에 가야만 합니다. 집에서 성당까지의 거리는 아이 걸음으로 30분은 걸립니다. 겨울의 6시는 아직 어둡습니다. 아들을 차로 성당까지 데려다주었으면 하고 아내는 내게 바랬지만 나는 그렇게 하질 않았고, 대가로 아이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아들의 할머니와 엄마가 주는 야속함의 눈총을 견뎌야 했습니다.
나는 딸보다 아들에게 좀 더 엄격했습니다. 연년생의 우리 아이들은 장모님이 키워주었는데 은근히 손자(나의 아들)에게 좀 더 신경을 쓰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딸이 너무 일찍 동생을 본 것이 측은하였고, 혹시 기가 죽거나 마음의 상처가 될까 염려되었습니다. 나는 여성 존중을 우선시하며 아들보다 딸에게 더 관대하였습니다. 아들은 좀 거칠게 커도 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항상 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크게(?) 한번 잘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PC 방에 간 것입니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안 아내가 동네 PC 방을 다 뒤져서 아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는 나에게 데려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혼나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답니다. 엄마에게 혼나면 사나이의 자존심이 다 망가진다고. 나는 할 수 없이 아내가 보는 앞에서 아들의 종아리를 쳐야 했습니다. 나를 아들로부터 이런 식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예전에 아들에게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아들이 써놓은 글의 일부입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내게 큰 벽이다. 이미 오래전에 나의 키와 체격은 아버지를 넘어섰지만, 아버지 앞의 나는 아직도 정신적으로 상당히 위축이 된다. 아버지 당신께서도 잘 아시는 일이지만, 나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와는 툭 터놓고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면 ‘또 내게 무슨 잔소리를 하려 그러시나’라는 생각에 자동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눈치만 보게 된다. 과장을 아주 살짝 섞자면, 법정에 비유했을 때 아버지는 판사고 나는 피고인이다. 그나마 최근 1~2년간 아버지를 보는 내 시각이 굉장히 많이 편해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아직도 아버지는 내게 부담스럽다. “
TV에서 가끔 아빠와 아들이 함께 뒹굴며 노는 장면을 봅니다. 나는 아들과 함께 몸으로 부대끼며 놀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경험이 나에게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가능하다면 아버지에서 다시 아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요즈음 코로나 19 덕분에 6개월째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3개월은 더 함께 있을 겁니다. 아들이 중학교를 마치고 내 곁을 떠난 후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는 것이 처음이며, 아마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아들에게서 아빠라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아빠가 되려고 노력은 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