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by 이재현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특별한 욕구가 없는 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먹고 싶은 음식을 찾는데, 나는 평상시 먹고 싶은 음식이 없습니다. 아내는 내가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인 줄 압니다. 나는 특별한 취미가 없습니다. 스포츠도 관심이 없고, 영화를 즐기지도 않으며, 공연이나 전시회 같은 것도 즐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기력한 사람은 아닙니다. 특히 하고 싶은 것, 특히 좋아하는 것이 없을 뿐이지 남이 하는 것은 조금씩 다 할 줄 압니다. 단지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해서 잘하는 것이 없을 뿐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춤을 잘 추셨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아버지에게 춤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옆에 앉아 구경하면서 아버지의 장단소리 ”스로우 스로우 퀵 퀵“을 따라 하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버지 칠순 잔치 날 어머니와 함께 춤추던 아버지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나는 춤을 추고 싶은 적이 없었고, 춤을 출 기회도 배울 기회도 없었습니다. 딸의 결혼식 피로연에 아빠와 함께 춤을 추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딸과 함께 한 시간의 연습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딸은 춤추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한때는 살사 댄스를 매우 열심히 배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딸이 춤을 맵시 나게 추는 건 할아버지의 춤 DNA가 유전되었나 봅니다.


나는 운동신경이 좀 발달한 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탁구를 잘 쳤으며, 스케이트도 멋지게 탔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키가 작은데도 농구를 곧잘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춤에 흥미를 갖고 춤추는 것을 배웠으면 나도 춤을 잘 추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딸의 결혼식에서 딸과 함께 좀 더 멋지게 춤을 추지 못한 것이 지금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29 프렌즈 합창단>은 고등학교 동기생들로 구성된 시니어합창단입니다.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지휘자로 합창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모여서 지휘자와 함께 노래를 연습합니다.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영산아트홀에서 제4회 정기연주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4년 전 합창단에 입단하여 테너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처음 합창단 입단 제의를 받고 당황하였습니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혹 회식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라 하면 그것이 나에겐 고역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겼으며, 끝까지 부를 줄 아는 노래도 없었습니다. 친구인 지휘자가 테스트를 한번 해보자 하기에 피아노 반주에 따라 노래를 불렀는데 성량이 풍부하다며 만족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좀 살살 이야기하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종종 들어왔기에 내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나도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악보를 볼 줄 모릅니다. 그러니 악보를 보고 음을 내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합니다. 반면에 나는 멜로디를 듣고 기억을 잘합니다. 그래서 나는 가사만 암기하면 악보를 안 보고도 노래를 곧잘 따라 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악보 보느라 지휘를 주목하지 않아 지휘자에게 주의를 듣곤 했지만, 악보를 안 보는 아니 못 보는 나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기연주회를 관람했던 친구들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입도 제일 크게 벌리고 즐겁게 노래한다고.


병원에 입원 중인 친구의 위문 공연도 했습니다. 친구 자녀 결혼식에서 축가를 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결혼하는 나의 딸을 위해 친구들이 축가 동영상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나는 딸이 결혼하는 날 딸에게 축가를 불러주는 멋진 아빠가 되었습니다. 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 나는 내가 노래 부르는 동안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지금에야 알게 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소설은 주변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시작됩니다. ”난나가 다니는 학교는 마을의 바닷가 언덕 솔밭 모퉁이에 있었다. 학교 교사가 바다 쪽으로 등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만조 때면 벼랑을 치는 파도소리가 교실의 판자벽을 울리곤 했다. “ 독자는 작가가 전하려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글을 읽어나갑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글을 읽으면서 묘사된 장면이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 묘사들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상상을 못 하기에 느낌이나 감정도 없나 봅니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습니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책들은 주로 학자나 전문가가 쓴 책들입니다. 나는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이 누구인가를 압니다. 그들이 쓴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조셉 캠블의 책 ’ 신의 가면‘을 읽으며 알았습니다. 나는 느낌이나 감정을 통해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부를 통해 머리로 이해하는 건조한 사람입니다. 상상력 결핍의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지난겨울에 가족과 함께 당진에 있는 책방 ’ 그림책 꽃밭‘을 방문했습니다. 책방 주인이 읽어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들으며 어릴 적 외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를 듣던 기분을 느꼈습니다. 호랑이 이야기를 들으며 금방 호랑이가 나타날 것만 같아 무서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내는 그날 이후로 나에게 손자에게 책 읽어주는 할아버지가 되라고 성화입니다만 손주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다시 마법의 성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 동화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이 지금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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