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직업이 뭐야? 골프야? “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에게서 온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아들의 눈에 아버지라는 사람은 매일 골프 가방을 메고 들락날락하는 사람으로 보였나 봅니다. 사업을 경영하는 사장으로 대학에서는 강의하는 교수로 불리던 40대의 젊은 나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스스로 자랑스럽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미래가 보장된 듯한 삶을 살았으며, 더 이상의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운명은 자만심에 빠진 나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나를 지켜주었던 경제적인 풍요를 모두 가져갔으며 가족이 생계와 두 아이의 미래에 대한 책임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화목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여겼던 우리 부부는 신뢰를 잃었으며, 갈등과 비난으로 3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지옥이었으며, 무지에 빠져 지냈던 40대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50대의 중년으로 들어섰습니다.
힘든 시간을 피해 책 속으로 숨었습니다. 운이 좋아 좋은 책들을 만났고, 그곳에는 나를 기다리는 훌륭한 스승들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었고,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고 그것을 푸는 것이 삶의 과제이며, 그 과정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 했습니다. 조셉 캠블은 신화 속 영웅들의 모험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를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깊고 넓으며 무한한 가능성의 무의식 앞에서 나는 겸손하게 되었고, 나에게 주는 무의식의 메시지에 관심을 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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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갈등 그리고 비난으로 가득한 지옥은 무지하고 자만했던 나를 녹이는 용광로였으며, 나는 그곳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고통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이 둘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도록 돕는 것, 오직 이것만이 우리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 외의 다른 가치는 이제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일을 시작하였고, 상처는 서서히 치유되어 갔으며, 우리 부부는 다시 신뢰를 회복해 나갔습니다.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많은 슬픔과 기쁨을 경험을 하였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하였고, 이웃의 뜻밖의 도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던 부모님이 우리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돌아가시게 하여 죄송한 마음입니다. 아이들이 모두 공부를 잘 마치고 이제는 제 길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부모님께서 보고 있다면 아마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느새 60대 중반의 장년이 되었습니다.
60에 서서 40의 나를 바라봅니다. 지금보다 큰 집에 살았고 지금보다 좋은 차를 탔으며, 지금보다 젊었고 지금보다 남들에게 인정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시절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보다는 나에게는 감추고 싶은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힘도 있고, 머리도 총명하고 모든 감각기관도 최고의 기능을 낼 수 있는 인생의 40대는 가장 치열하고 힘차게 삶을 사는 시기였습니다. 힘든 경험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아들여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였습니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나는 어리석게도 안정에 도취하여 그냥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무지하게 흘려보낸 40대의 시간을 지금 나는 후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