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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리 Mar 02. 2021

나의 영어 흑역사

나와 영어의 악연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시골에서 다녔으며 공부를 꽤 잘했다. 그 덕분에 나는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을 했고 그곳에서 처음 영어를 만났다. 내가 알파벳을 보며 신기해할 때 친구들은 영어 문장을 읽었다. 나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고, 내가 일어서서 영어 문장을 읽으면 친구들은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도 서울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하고 입학하였던 것 같다. 다급한 마음에 ‘삼위일체’라는 영어책을 사서 공부하려고 시도하였지만 헛수고였다. 중학교 1학년 나의 첫 성적은 57등이었으며, 그때 우리 반 정원은 60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4등을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혼났던 나에게는 충격이었고 나의 자신감은 곤두박질쳤으며 그때부터 영어는 나의 공포대상이었다.

    

나는 영어를 일찍이 포기했다. 우리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었는데, 월말고사는 국어, 영어, 수학만 시험을 보았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전 과목 시험이었다. 월말고사에서 나의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중간/기말고사에서는 상위권이었다. 성적으로는 그럭저럭 체면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영어를 못하는 것에 큰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 영어 공부에 할당할 시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함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성적을 관리하였던 셈이다.

     

드디어 영어가 나의 발목을 잡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대학입시는 국/영/수가 항상 필수였고 나머지는 선택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으로의 진학에 실패하였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교양학부에서 필수과목인 영어 학점을 취득하지 못해 졸업을 앞두고 재수강을 하여야만 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직장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도 영어는 항상 내가 가려는 방향에 장애물이었다.

      

영어는 나의 삶에서 아킬레스건 같은 것이었다. 살아오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늘 영어를 잘했더라면 좀 더 좋은 기회가 나에게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만큼은 영어를 잘하게 해주고 싶었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함께 영어 듣기를 시작하였다. 우리 집에는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영어 회화를 공부할 요량으로 구입했지만 15년 동안 책장에서 잠만 자고 있었던 ‘미시간 액션 잉글리시’라는 영어교재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6시부터 한 시간 동안 그 테이프를 들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3년 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영어에 대한 나의 한풀이가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 뒤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외국어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은 미국으로 진학하였고, 지금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이제는 진짜로 영어를 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딸은 미국에서 결혼하였고, 사위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우리말을 잘하지 못한다. 좀 재미있고 유익한 대화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사위에게 두 번의 편지를 썼으나 나의 마음이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아들도 결혼하게 될 텐데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지난해 말에 손주가 태어났다. 손주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 아이에게 동화도 읽어주고, 조금 크면 함께 손잡고 산책도 하고, 좀 더 크면 여행도 같이 가보고 싶다. 어쩜 이게 내 마지막 소원 일지도 모른다. 아이와 친하게 지내려면 영어를 배워야 한다. 더불어 사위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동안 나는 영어와의 맞대결을 피해 왔다. 영어 점수가 안 나오면 영어 공부를 하는 대신에 다른 공부로 만회하려 했고, 영어 실력이 없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전공에서 두각을 나타내려 했다. 자신에게 맺힌 영어의 한을 자식들을 통하여 보상받으려 했으나 급기야는 그 역풍이 나에게 되돌아와 이제는 손주나 사위하고 친하게 지내려면 영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까지 요리조리 잘 피했는데 이제는 외나무다리에서 영어와 딱 맞닥뜨린 형국이 되고 말았다. 영어를 포기함으로써 손주와의 즐거움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영어를 극복하고 즐거움 얻느냐 이젠 나의 선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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